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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쪽 남자 선생님 Oct 10. 2022

고객들이 보는 전문직은

전문직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선 또는 색안경, 그 사이 어딘가..

네이버에 '전문직'을 쳐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 무엇이 '전문직'인지에 대해 명백하게 정의한 법령은 없다, 실제로 사회 통념상 ‘전문직’은 모두 직업분류상 ‘전문가’에 포함된다, 고용 직업분류(KECO)상 회계사와 경리사무원은 같은 직능 유형인 대분류 '02. 경영·행정·사무직'에 속하지만, 직능 수준에 따라 중분류가 '023. 회계·세무·감정 전문가'(회계사)와 '027. 회계·경리 사무원'(경리사무원)으로 다르다. 같은 직종이나, 회계사는 전문가이고, 경리사무원은 사무원인 것이다"


고객들은 병원 사무원을 전문직으로 봐주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경영, 행정, 사무직에 대한 것도 맞고 단지 병원에서 이 일들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고객들이 보는 전문직에 대한 시선 또는 색안경,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원무 창구의 업무는 다양하지만 나는 크게 두 개로 나눈다. 

첫째, 고객이 병원을 이용할 때 응대해야만 진행이 되는 일을 하는 '응대 업무'

두 번째, 고객이 병원을 이용할 때 전산작업을 해주어야만 진행이 되는 일을 하는 '전산(행정 포함) 업무'


다시 이 두 개를 고객들이 보는 시선으로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응대 업무 - 고객인 나와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하여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보이는 업무'

전산 업무 - 뭐하는진 모르겠지만 앉아서 할 일도 안 하는 거 같은데 컴퓨터만 보고 바쁜 척하는 것, '안 보이는 업무'


보이는 업무에 있어서는 고객들은 나를 매우 신뢰하고 '전문직'으로 생각해준다. 고객이 느끼기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1:1 상담 서비스 같기 때문인 것 같다.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고객을 대하고, 고객이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온몸이 아프다고 표현해도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시고, 온몸이 다 아프셨어요?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우선 먼저, 현재 가장 불편한 부분부터 진료를 보시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고객님. 현재 어떤 부분이 가장 불편하실까요?"와 같이 고객을 헤아리는 것 같은 응대를 해주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존중받는 느낌과 대우받는 느낌까지도 들 수 있다. (물론, 어떤 분은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기분 나빠하시기도 한다...)


한 번은 그런 경험이 있었다. 원무 창구에서 진료가 다 끝난 고객의 수납 업무를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내게 수납 업무를 마치고는 이렇게 물으셨다, "저기.. 선생님, 실례지만 슬쩍 물어볼게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이런 큰 병원에서 선생님처럼 창구에서 근무했으면 좋겠는데.. 혹시 대학교에서 어떤 학과를 나와야 하나요? 연봉은 어떠세요? 전문직이라 돈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



................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저런 질문을 간혹 받곤 해서 질문 자체가 당황스러운 건 아니었는데 내가 당황스러웠던 점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애매한 것 때문이었다. 내가 정성스럽게 대답해드리면 고객님도 원하는 정보를 얻어 기분이 좋고, 고객님의 자제분께서도 목표가 생기고 또 꿈이 생기고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너무 좋은 얘기만 해주기도 솔직한 얘기만 해주기도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나만 정확히 물어보시지 그걸 또 극명히 반대인걸 물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10초 정도 고민한 뒤에 이렇게 답변드렸다.


"고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서 기분이 좋아지네요~ 정확히 다 답변드릴 순 없지만, 자제분의 꿈 혹은 목표가 될 수도 있으니 일부 답변은 드리겠습니다. 다양한 대학교에 보건 관련 학과들이 있습니다, 그중 보건행정 관련된 전공이 있는 학과를 졸업하시면 병원에서 원무 창구 업무 또는 병원에서 행정 업무들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문직은 맞지만, 병원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닌 비영리 기관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들처럼 엄청난 수당이나 복지들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충분히 답변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자제분의 진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거짓을 말하였다.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고객님이 사실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단순했다. 

"이런 큰 병원에서 앉아서 전문적으로 응대하는 거 보니 너 돈 잘 벌 것 같은데, 맞니? 맞으면 우리 애 시키게"


나는 정말이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돈을 버는 곳에 가야 돈을 벌지 않겠습니까?"




전문직으로 봐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15년도에 병원 근무를 처음 시작한 제 월급은 세후 월 171만 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경험에 기반한 글을 적다 보니 다시금 울컥하면서도 화도 살짝 나면서도 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낀다.. 너무 멀리 왔지만 안 보이는 업무에 대해서 적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안 보이는 업무에 있어서는 고객들은 나를 매우 신뢰하지 못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컴퓨터 모니터나 쳐다보고 타자나 치고, 대충 시간 때우다 퇴근하고 월급 받아먹는 그런 사람 같은 것 말이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번호 호출을 하여 응대 업무를 하지 않고 전산 업무를 하고 있자면 고객은 나를 '노는 사람 혹은 일 안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응대 업무만큼 전산 업무는 매우 중요한데 보여주면서 할 수도 없고 매우 답답할 노릇이다.(전산 업무로는 어떤 업무들을 하는지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에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전산 업무를 하고 있다 보면 고객들은 번호 호출을 하지 않았는데도 번호표부터 들이밀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업무 안 해요?", "일하는 척만 해요?", "컴퓨터 앞에 앉아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월급만 축내네", "전화만 받고 컴퓨터만 보고 있을 거면 왜 앉아 있나?", "당신들 업무가 컴퓨터 하는 거예요?"


더 험한 말들도 많지만 자체 심의를 준수하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나 뚜들기는 나의 모습을 보는 고객들은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어 한다. 맞다, 컴퓨터에 앉아서 타나 뚜들기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무 창구에서 해주어야 하는 전산 업무들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고객의 인적사항이 맞지 않으면 수정해주어야 하고, 고객이 정당히 받아야 하는 나라의 제도에 의한 혜택 또는 기관과 병원의 전산에 대한 연결도 해주어야 하고, 고객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닌 건강보험이 가입되어 있는 유형으로 구분 지어줘야 하는 업무도 해야 하고, 본인부담금액이 잘못 산정되지 않게 중간에서 확인하고 수정 요청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냥 "아"해서 "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가지고 문제 소지가 발생되지 않게 하는 업무이다. 아마도 고객들은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여 진료 또는 처방을 받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있으며 이러한 잘못된 진료나 처방이 발생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또한 전산 업무 중에 하나다. 




보이는 업무와 보이지 않는 업무 모두 병원을 이용하는 고객을 위한 업무다. 병원은 생각보다 복잡한 기관이기 때문에 법과 관련된 문제도 많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부분, 또 윤리적인 부분 등 보이는 업무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업무도 많다는 것을 고객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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