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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27. 2020

열한 살의 비유를 통한 철학 강의

스피너의 철학


아들이 스피너를 돌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전 상황은 아들이 숙제를 안 하고 버티는 상황. 내 입장에서는 숙제를 하고 안 하고가 우리 집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중요한 지점이 되어버려 더 잘 더 성실히 정성껏 숙제를 하라며 잔소리를 하는 중이었고, 아들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숙제를 안 할 수 있는, 대충 해버리고 저 좋은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는 중이었던 셈이다.

나는 정신건강을 위해 쉬어야겠다. 며 숙제 대충 하려거든 마음대로 해라! 선언을 하고 마루에 남편과 아들만 두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 속에서 마음 다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문이 열렸으니 고운 눈으로 아들이 봐지지는 않았다.




엄마! 내가 뭐 하나 알려주러 왔어!




에휴. 뭘 또 줄줄줄 읊어 나의 정신을 흐리게 하려는고 하며 아들을 봤다. 아들은 스피너를 검지와 엄지로 잡고 쌩쌩 돌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 검지 손가락은 아빠야. 그리고 스피너는 나야.




아들이 거기까지 말을 해놓고 검지를 스피너에서 떼었다. 스피너가 아슬아슬하게 엄지 위에서 돌아갔다.




엄지손가락은 엄마야.
엄마가 사라지면?





아들은 이 말과 함께 엄지 손가락을 스피너에서 뗐다. 스피너가 내가 앉아 덮고 있는 침대 이불 위로 풀썩 떨어졌다.




나는 어떻게 됐지?




나는 물끄러미 스피너를 내려다봤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다. 둘이 알아서 해보아라! 하며 방에 혼자 들어가 입 내밀고 앉아있는 나에게 아들이 하고 싶은 말은 '하든지 말든지!'가 아니라 '꼭 해라. 정성은 이런거다.'라고 말하고 아빠랑 같이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였던 것 같다.


아니면 아들이 그냥 한 말을 내가 찰떡같이 알아들은 걸까?






<열한 살이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한 일분 강의>에 입이 다시 바로 안 닫혔으니, 엄마가 질서의 개념을 새로 잡아야 하는 시점인가 싶다. 숙제란, 자기가 해낼 수 있는 만큼...... 정성이란, 절대적 평가가 불가능한 것.


<오늘도 너덜너덜한 마음 타의에 의해 잽싸게 추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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