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름
마지막 편을 보고 소름 돋아 쓰는 글.
이태오는 두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지선우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해받고 싶어 했다. 두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이태오는 그런 남자다.
지선우는 이태오를 철저하게 망가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쁜 짓을 한 이태오만 가족에서 도려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에서 이태오는 죽음으로 부인과 아들에게 용서받기를 바란다.
그렇게 죽음 앞에 서있는 이태오를 지선우는 용서한다.
죽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이태오를 끌어안는 것, 용서의 마음이 분명하다. 바람피우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술에 절어 자기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추접하게 음식을 몰아넣으며 울며 매달리는 '가족이 그런 거 아니냐.'며 자기를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는 이태오를 받아들인다. 이태오는 그런 지선우를 움켜잡으며 운다. 후회의 눈물은 이미 다 흘렸을 테고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은 참 눈물 났다. 둘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아무리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주었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아름다운 순간. 성장의 순간. 한 인간을 이해해 낸 순간. 지선우는 이태오를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아팠고, 이태오도 지선우를 이해하기 위해 아팠다.
둘은 만신창이가 되었을지언정 서로를 이해한 것이다.
이것이 부부의 세계구나......라는 깨달음을 서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을 보는 준영이는, 아직 부부의 세계를 모르는 준영이는 휴대폰을 던지고 뛰어가버린다. 준영이가 던진 휴대폰은 무엇이었을까. 준영이는 엄마에게 휴대폰으로 항상 물었다. "엄마 언제 와?" 그리고 휴대폰에서 아빠와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기도 했다.
준영이가 휴대폰을 던지고 뛰어가버리는 그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준영이가 물도 있고, 먹이가 항상 있지만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새장 문을 박살 내버리고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 준영이가 새장 문을 열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엄마와 아빠의 그늘에서 답답함에 도벽이 생기고, 친구를 때리고,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고 결국 엄마를 선택해서 행복을 찾은 듯했지만 그건 결국 새장 안에서 내가 어떤 음식을 언제 먹게 될까에 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준영이의 날갯짓에 아직도 마음이 먹먹하다.
성장은 참 아름답다.
자극적인 불륜이 소재로 쓰였지만
부부의 세계니까, 우리는 결국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나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고 부딪히고 싸우고 이해해달라고 외치고 이해하려고 발버둥 치고 결국 그, 또는 그녀가 꼭 내 옆이 아니더라도 꼭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해주지 않더라도 꼭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내 세계와 그, 그녀의 세계가 합쳐진 부부의 세계 안에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이렇게 드라마에 푹 빠져 글을 쓰는데
남편이 말한다.
"막장드라마를 왜 봐? 마스크 사러 가자."
나도 남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섞인 부부의 세계 안에 있다.
내 아들이 날갯짓을 할 순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띠도디도!~
마지막 벨소리도
(지선우 집의 벨소리은 항상 공포의 벨소리였는데)
참 좋았다.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기다림 후의
그 청명한 소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