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다리가 쑤셨다.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요가도 해보았지만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한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를 않았다. 아주 기분 나쁜 아픔이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기분 나쁜 아픔은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것이었다.
그때는 한창 그림책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내 모든 걸 걸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때였다. 작은 수첩이나 종이뭉치를 어디에든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한남동에 있는 폴 바셋 제일 옥상에서 햇살을 받으며 뜨끈한 라떼 한잔을 옆에 두고 언젠간 출판될 내 책의 출판 시기를 앞당기고 출판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를 전면 차단하는 방법은 역시 이런 <성실>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주구장창 앉아 그림을 그리던 그 날이 선명하다. 오른쪽 다리만 안 아팠다면 정말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폴 바셋을 나와 예약해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과를 어느 쪽으로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증상을 말하고 상담해주는 데로 예약을 했는데, <신경외과>였다.
대학병원은 참으로 쾌적하지만 마음이 콩알만 해진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간호사님들을 보면 눈을 피하게 되고 구석을 찾아 조용히 앉아있게 된다.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작은 전단지에 설명되어있는 각종 질환의 전조증상이나 진짜 증상, 치료방법들은 병명을 모르는 나의 가슴을 더 쪼그라들게 했다.
드디어 진료 시작. 의사는 나에게 증상을 듣고는 검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아주 이상한 검사였다.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만 받는 검사인 듯했다. 나처럼 어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검사실에서 순번에 맞는 환자를 부른 선생님도 내 이름에 내가 대답을 하니 좀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심각하게 검사를 받았다. 다리 여기저기에 뭘 붙이고 신경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럼 대체 왜 아픈 걸까? 의사는 나에게 일단 먹어보라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진통제와 또 다른 약이었는데 진통제를 먹어야 할 만큼 고통스럽게 아픈 건 아니었기 때문에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약은......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신경 안정제였다.
그림을 주구장창 앉아서 그려댔으니 한쪽 다리가 안 아플 수가 있었겠냐는 생각이 든다.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의 질문은 언제나 같다. 그 날 그 의사도 그렇게 물었다.
"언제부터 아팠나요?"
나의 대답은 많이 걸러져서 나왔다.
짧은 진료시간과 간호사들의 진지한 눈초리, 대기환자들, 병원의 공기에 걸러진 나의 대답은 이랬다.
"한 달 전부터 아팠어요. (그때쯤이 출간 욕심에 불을 붙인 지 몇 달 된 시점이었거든요. 틈만 나면 앉아서 그림을 그렸어요. 의식적으로 골반을 바로 하려고 하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저의 오른 다리는 왼다리 밑으로 깔려 눌려지곤 했던 것 같아요. 혹시 앉아서 그림을 너무 그리면 한쪽다리만 걸을 때마다 아플 수 있나요? 욕심이 무섭네요.)"
그래서 내가 진단한 오른 다리 통증의 병명은
<출간욕심병>
혼났다.
오른 다리가 말했다.
"너 책 좀 빨리 내자고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이야! 다시는 그러지 마라! 그림은 시간 정해놓고 그려!"
그렇게 완성된 책은
<너는 누굴까>
이 책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뱅기타고 가서 그림책 좋아하는 세계사람들 앞에서 상받은 기분 꽤 좋았으나 다신 그렇게 불나게 그리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