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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May 15. 2020

엄마 손에 가시가 박혔다.

우리 엄마는 그야말로 자린고비의 후손이 아닐는지 확인해보고픈 맘이 들 만큼 올곧으시다. 병원은 웬만해서는 가지 않으시고 모든 걸 손으로 하신다. 그것도 도시에서 살면서 말이다.

아파트 베란다 정원을 보며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무너지는 거 아닐까?"

음식 쓰레기 중 흙과 섞어도 될만한 것들은 모여 몇 년이 지나 거름으로 재탄생. 소금도 몇 년 동안 간수가 빠져 최상급 소금으로 재탄생. 된장 고추장 매실 등등 철철이 손으로 직접 다 하신다.

예전에는 조기를 사다가 베란다에서 굴비도 만드셨었다. 철저함과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칫 자그마한 부분이라도 놓치면 다 버려야 하는 일이 생길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친정 베란다에는 아주 좁은 오솔길을 두고 정말 튼실하게 자란 화초들과 고추장 된장 항아리가 빼곡하다. 화초들의 키는 천정을 넘은 지 오래라 계속 잘라주고 계신다. 나는 쭉 봐왔던 광경이지만 남편에게는 걱정이 될 만도 했겠다 싶다.


그런 엄마 집은 주말엔 식당으로 바뀐다. 외식이란 없다. 집 앞 농수산 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로 모든 걸 만드신다.


그날 엄마는 추어탕을 만들었다. 나는 만드는 방법을 전혀 모르지만 엄마는 가시를 발라내서 식구들에게 부드러운 추어탕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손으로 가시를 발라내었다. 나는 이런 올곧은 엄마에게 일부는 질리기도 하였고 또 일부는 존경하기도 하였으니 추어탕을 먹는 일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엄마가 낮동안 발라낸 미꾸라지들을 갈아 만든 추어탕을 맛있게 저녁으로 먹고 다들 티브이 앞에 앉아 웃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시 좀 빼줘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엄마를 닮아 손으로 못하는 게 없는 엄마 이 세다. 아빠의 유전자도 섞였으므로 지구력이 겸비된 철저함은 빠졌지만 가시 빼기에는 지구력이 필요 없다. 순발력과 손재주 완벽한 중추신경이면 된다. 엄마 손가락은 중간 부분이 부어있었다.

아, 갑갑했다. 손이 이렇게 붓도록 참고 있었다니! 그리고 망할 미꾸라지 가시는 왜 손으로 다 뺀 단말인가! 왜 우리는 추어탕을 꼭 집에서 먹어야 한단 말인가! 나의 활화산이 다시 용암을 뿜고 엄마 손을 바늘로 휘집었다. 그 미꾸라지 가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감각이 좋아서 눈치로도 이 즈음에 가시가 았겠다 예상을 함과 동시에 어느 부분을 누르면 가시의 끝이 어느 쪽으로 살짝 들릴 지도 파악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활화산이 불을 뿜어 그게 잘 안 통했는지 아니면 미꾸라지 가시가 원체 얇고 질기고 투명했는지 가시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바늘을 내려놓았다.

"엄마 어떡해. 내가 너무 쑤셔서 가시가 더 깊게 들어갔나 봐. 생선가시는 위험한데. 감염되는 거 아닐까? 생선 가시에서 나온 균에 감염돼서 막 큰일 난 사람들 얘기 들은 거 같은데."

"엄마! 더 부었어! 안 되겠다. 병원 가야겠어."

"그러게 왜 가시를 손으로 빼가지고 이게 무슨 일이야."

내 활화산은 마음껏 용암을 뿜었다. 용암이 강력했는지 엄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얼굴에 약간의 흔들림을 발견한 나는 더 용암을 튀겼다.

"엄마 지금 응급실 진료비를 아까워할 때가 아니야. 이렇게 부었는데."

"돈은 쓸려고 버는 거지."

"가야 된다니까. 나중에 더 아프면 어떡할 거야?"


남편도 한몫했다.

"병원 가시죠. 제가 운전할게요."

엄마는 남편과 아빠와 함께 동네 병원 응급실로 갔다.


두 시간도 더 지나서 엄마가 돌아왔다.




"얘, 태어나서 이런 호강은 첨 해본다. 나를 이렇게 조심조심 엑스레이 찍어주고 피검사해주고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돈도 최고로 많이 써봤네. 다 확인했는데 가시 없대. 네가 가시 뺏나 봐. 아니면 가시에 찔리기만 했던가."


엄마의 병명은

<두시간동안자린고비를금지한다병>

내가 드렸다.

완벽한 중추신경을 가진 딸의 활화산 덕분에

엄마의 올곧음이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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