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얘기를 하자면 하도 울어 이제 안 울고 얘기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청춘을 즐기던 시절, 활화산에 굳이 찬물을 붓지 않던 시절, 인라인 타기가 유행이던 시절, 인라인에 맞춤으로 원래 두껍던 내 허벅지가 최상으로 두꺼웠던 시절, 같은 부서 노처녀 상사가 나와 같이 놀기를 원하던 시절.
그 시절에 나는 남자 친구와 인라인을 신나게 타다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피했다. 내 주행로를 침범한 어떤 청년의 자전거를 피하기 위해 내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최고속도로 내달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었고 자유는 박살이 났다. 내 이빨도 박살이 났다. 청년은 미안함을 호소한 듯하였지만 그저 청년이었을 뿐이었으므로 그냥 집에 갔고 나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시절에는 임플란트 비용이 천만 원 단위였다는 사실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돈이고 뭐고 비어버린 내 이빨 때문에 몇 달은 울며 지냈던 것 같다. 이빨의 사망 선고를 받는 날, 그때 다 울어서 지금은 그 사고에 감정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치과 울렁증이 남았다.
치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생긴 나는 대학병원 치과 선생님들이 얼마나 정성껏 환자의 이빨을 대하는지를 알아버렸다.
마흔이 된 어느 날, 이빨이 아팠다.
에스 대학병원이라고 써진 치과가 마침 아이 학원 옆에 있었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치과 선생님에게 내 이빨을 맡겼다.
선생님은 내 이빨을 다 보고 여기저기 두드렸다. 완벽한 중추신경의 통제를 받는 내 혀는 선생님이 두드리고 지나간 자리의 내 이빨의 외곽 형태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런 정성으로 환자 이빨을 대하다니......'
실망감이 밀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빨이 약간 깨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선생님은 '허허' 웃으며 그렇게 두드려서 부서질 이빨은 문제가 있는 이빨이죠!라고 하고 그 뒤부터는 내 이빨을 두드리지 않았다.
화산이 또 활동을 시작하겠구나 하는 심적 감지가 왔다. 그래도 치료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신경치료가 아닌 이상 나는 마취를 거부한다. 의사 선생님은 마취를 안 하는 환자를 대부분 응원한다. 의사 선생님은 내 썩은 이를 신나게 갈았고 나는 꼼짝도 안 하고 모든 신경이 나에게 주는 모든 느낌을 다 느꼈다. 갈아낼 때는 문제가 없었다.
일주일 후, 본뜬 가짜 이빨을 넣는 날.
나는 나의 완벽한 중추신경으로 가짜 이빨을 최대한 거부했다. 크기가 맞지 않는 느낌.
무지막지한 가짜 이빨이 쑤셔 넣어지는 느낌.
의사 선생님의 손이 일반적인 수순을 밟지 않고 약간이라도 떨렸던 순간의 느낌.
화산이 활동을 재개한 순간의 느낌.
의사 선생님은 안 맞는 가짜 이를 힘으로 넣고 있었다.
"아악!"
"원래 이렇게 꽉 눌러야 합니다. 그래야 붙이는 재료가 뜨지 않아요."
"네......"
"이를 꽉 물고 있으세요."
"아...... 네......"
나는 이를 못 물었다. 이가 다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에게 내 이를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가짜 이가 들어가고 치실로 본드를 제거하는 일이 시작됐다.
이를 갈아낼 때는 마취도 없이 꼼짝도 안 한 나였다. 다른 선생님이 치실을 하다가 힘이 부족한지 의사 선생님을 불렀다.
의사 선생님은 온 힘을 다해 치실을 넣으려고 했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별로 세게 안 했는데. 아픈 거 아니에요."
"네......"
다시 치실.
"아아아악!"
"안 아픈 건데...."
그리고 내 화산이 폭발했다.
"아파요. 저는 아프다고요."
"네......"
마지막으로 그 이를 갈아내서 내 원래 이빨과 비슷한 모양으로 갈아내는 일이 남았다.
선생님과 나는 진이 빠졌다.
"오늘은 이만하고 불편하면 다시 오시죠."
일주일을 버텨봤지만 고역이었다. 내 이빨이 '너의 새 이빨이 너무 무거워!' 하며 발버둥을 쳤다.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커피를 사들고 갔다. 엄청 크게 소리를 지른 건 아니지만 분명 짜증 섞인 소리를 뱉었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섞인 커피였다.
의사 선생님은 계속 갈고 확인하고 갈고 확인했다.
나도 계속 혀로도 확인하고 이를 부딪혀보며 '내 이빨이 최고야. 너는 그 전 아이랑 모양이 다르구나. 달라. 넌 달라! 의사 선생님은 완벽하지 않구나! 왜 똑같게 해주지 않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절대 그 전 이랑 같아지지가 않았다.
난 포기했다.
"불편하면 다시 올게요."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편하면 또 오세요. 하지만 제가 환자분 중추신경을 어떻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예민함을 버려야 해요."
쿵.
화산이 활동을 멈췄고 내 병명이 떠올랐다.
<텃새병>
내 구강안의 모든 것들이 텃세를 부렸다.
텃새병은 서너 달쯤 후 자연 치유되었다.
가끔 내 중추신경은 가짜 이빨의 형태를 혀를 시켜 확인하는데 여전히 그것은 예전 이빨과 다르다. 그래도 텃새는 안부린다. 달라도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