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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리 Apr 29. 2024

[인터뷰] 연세대 나와서
전업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돌연변이,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 1편 - 작가지망생 '이언두'

돌연변이,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

- '이상한' 진로를 가진 돌연변이 20대들을 인터뷰합니다.

스물 다섯.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사회가 정의한 보장된 성공의 길은 걷기 싫다는 '반골기질'이 나를 괴롭힌다. 이런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또 방황하지만,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나다운 길을 걷는다는 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움에 숨어 '시작'조차 못하고 있을 때, 수많은 나의 꿈들이 그저 '가능성'의 상태에만 머물러 있을 때,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변 이미 '시작'한 친구들이 보인다.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을 만나 시작에 대해 묻다 보니, '이상한' 진로를 택한 돌연변이 20대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진로를 선택할 용기가 있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시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직 '시작'을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시작'이 두려워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



1편

작가지망생 '이언두'

연세대 나와서 전업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Q. 소설가는 뭐 하는 사람이야?

소설가?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운데, 나는 ‘거짓말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게 매력적이어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내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두려운데, 거짓말이라는 장치가 있다면 내가 오히려 더 솔직해지고 과감해질 수 있고, 서툴러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


Q. 가장 기억에 남는 거짓말 경험이 뭐야?

항상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게 두려웠던 것 같아. 어렸을 때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라고 물어보면 늘 ‘할머니’라고 대답했어. 왜냐면 엄마 아빠는 내가 (그들을) 제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를 제일 사랑해줄 거라는 게 확실했고, 할아버지는 덜 서운해 할 것 같고, 할머니는 제일 서운해 할 것 같은 거야. 어렸을때부터 집 안에서 ‘똥강아지’ 같이 귀여움 받는 삶을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에게 귀여움을 충족시켜줘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있어. 그런 걸 충족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기쁘게 만들기 위한 거짓말.


Q. 소설가로서의 언니의 ‘시작’은 뭐였어?

합평 수업을 가면, “언제부터 글을 쓰셨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쓰는 게 글이잖아. 언제부터 글을 썼냐는 말은 언제부터 소설을 썼냐는 말과 같아.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언제부터 확립했냐는 물음이지. 나는 그 기준을 ‘내가 이걸 직업으로 삼아야 겠다고 생각한 때부터’로 삼았어. 내가 생계 수단으로서 작가에 매달리겠다고 각오를 한 순간이지.


그 순간에 대해 정확히 말하라면, 잘 모르겠어. 모든 것들의 경계는 무 자르듯 명확하진 않다고 생각해. 시작은 더 더욱 모호하지. 순간 순간들이 모여 이뤄진 결심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했던 깨달음이 있는데, 내가 팀에 속해서 하는 일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야. 대학 시절 내내 연극을 했었어. 각본을 쓰거나 연기를 하거나 표현하는 일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거든. 연극을 하면서 팀으로 하는 일보다는 혼자 하는 일이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지. 그걸 직업으로 구체화한 게 작가인 것 같아.


Q. 취준은 왜 안 했어?

나 취준 했었어. 엄청 짧게. (왜 그만뒀어?) 첫 번째는, 취준이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어. 플랜 B였지. 그런데 취준은 플랜 B일 때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두 번째는, 내가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한 조직 안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어떤 집단에 쉽게 몰입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한 집단에 깊게 속했을 때 그 집단에 취해서 외부를 보지 못하거나,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게 두려워. 그래서 나는 조직의 규칙과 문화에 젖어들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를 빼내려는 습성이 있지. 그런데 성과는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거더라고. 취준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나에게 취준은 플랜 B인데다가, 내가 직장에서 빠르게 몰입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면? 차라리 그 노력을 내 플랜 A에 투입해서 더 빨리, 더 높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에, 내 친구들 중에 빠르게 취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이 잘 맞는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자기 소속이 생기면 소속감을 확실히 느끼고, 내집단에 빠르게 몰입하는 사람들이더라고. 그런 친구들이 직장에서도 빨리 적응을 해서 빠르게 성과를 내고, 그게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근데 나는 그렇지가 않은 거야. 어떤 집단에 속하면 몰입을 잘 하지 못하고, 자꾸 빠져나오려는 성향을 갖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정말 다양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도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난 친구를 하는 편이야.


Q. 언니만의 길을 걷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나 고민은 없었어?

진짜 너무 많지. 그런데 어떤 걸 직업으로 삼으려면, 그 직업의 장점이 잘 맞는것도 중요하지만, 단점과 잘 맞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다른 길을 선택할 때 생기는 단점보다 작가를 직업으로 삼을 때 생기는 단점들이 나에게는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아. 나도 이 길을 선택하고 미래가 안 보일 땐 막막하고 슬픈데, 그 슬픔이 극에 달하는 건 아니야. 그냥 ‘음 슬프다.’ 이 문장 하나로 끝나는 것 같아. 다른 것에서 오는 우울과 괴로움은 글로 한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감정들인 반면에. 그래서 좀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Q.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가로서 언니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언니가 하고 있는 노력들에는 뭐가 있어?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다야. 나는 너무 독창적이려고 하진 않아. 글을 쓰다가 막히면 무조건 다른 사람 글을 읽어. 그리고 그들의 문장을 조금씩 바꿔서 내 걸로 만드는 작업들을 해. 그러면 풀릴 때가 있어. 내 글이 너무 부끄러울 때는 다른 사람들 글 읽으면서, “그래. 내 글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괜찮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해. 너무 내 안에 갇혀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것을 가져오려고 노력하지. 


보조적 수단으로 합평이나 스터디를 하기도 하는데, 합평 수업은 필수라기보다 나에게 최소한의 데드라인을 부여해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야. 글을 쓰다보면 내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필요한데, 처음부터 나 혼자 하긴 힘드니까 돈을 내고 양질의 피드백을 받고, 나의 길을 잡아 줄 수 있는 수업을 듣는 거지. 합평이나 스터디는 나의 글쓰기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보조 수단일 뿐이야. 하루키는 매일 5장을 썼다고 했지만, 정작 매일 5장을 쓰고 5장을 버려야 될 수도 있어.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해.


Q. 언니는 매일 써?

나 매일 안 써. 근데 매일 쓸 때는 매일 써. 그런 거에 대한 강박은 없어. 공부할 때도 나는 공부가 안 되면 하루종일 아예 공부를 안 했어. 대신 그게 이틀이 되지 않게 했어. 글 쓸 때도 안 써지면, ‘그래 하루 하지 마. 근데 이틀이 되게 하면 안 돼.’ 라는 기준이 있어.


Q. 그래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 장면 구성은 AI가 할 수 있지만, 발상은 나만 끌어올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 내가 사는 삶을 계속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돌연변이 -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는 '이상한' 진로를 선택한 돌연변이 20대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시선을 글로 엮어낸 모음집입니다.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진로를 선택할 용기가 있었던 청년들, 그 청년들의 '시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어디서 그런 '계기'가 생겨난 건지,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인사이트를 글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사회가 정의하는 일반적인 성공의 길이 아니더라도, 과감하게 나의 길을 찾아 발을 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미 성공의 궤도에 올라탄 직업인의 이야기가 아닌, 용기있게 진로를 결정한 것만으로 귀감이 되는 '시작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인터뷰, 출판 등의 문의 및 협업제안은 hyunjoly1573@gmali.com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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