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나비효과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어림잡아 약 15년 간 하루에 삼시 세끼를 먹은 일이 있었던가.
두 끼는커녕 평일엔 하루 한 끼, 이 한 끼마저도 신경 써서 챙기는 날은 오전에 커피와 빵 하나 혹은 야근 후 간단한 안주와 맥주로 마무리하는 정도. 신경 쓰지 않는 날은 커피 두어 잔으로 하루 식사 끝.
간헐적 단식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간헐적 단식 상태로 살아온 셈인데, 특히 평일엔 아주 가끔 생기는 업무상 식사 약속 외에는 밥을 챙겨 먹지 않는다.
(주말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저녁 정도는 고심해서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는다)
포만감 뒤에 오는 늘어짐을 도저히 못 견디기도 하고, 식사 후의 나른함에 집중력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정. 말. 아무렇지 않았고 전혀 힘들지 않았으며 언제나 유지되는 동일한 상태의 집중력과 또렷함을 좋아하기도 했다.
참고로 나는 먹는 것 자체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냉면집에 가면 냉면만 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수육 추가, 만두 추가), 칼국수집에 가서 파전을 시키지 않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사람.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시키면 아니 그건 그냥 찌개인데 메인 반찬은? 을 외치는 꽤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범주의 사람이다.
그래봐야 그런 일은 가끔의 주말 저녁에나 해당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오늘도 하루종일 커피 두 잔으로 아침과 점심을 각각 때우고 중요한 회의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노트와 펜을 들고 내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메모하려는 기세의 눈이 반짝반짝한 대학생들에게 애정 어린 진로상담을 해주기도 했고,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크고 작은 일을 지시했고, 작년부터 진행하던 일을 잘 마무리한, 여전히 행복이라는 일반적 정의에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의인 “아주 발전적인 하루”를 보낸 후 작은 성취감을 안고 퇴근하는 길.
평소와 다름없는, 늦은 시간이라 막힘없이 달리는 강변북로 위에서 깜깜한 차 안이 댕댕~ 울리도록 크게 coldplay의 Fix You를 들으며 갑자기 번개를 맞은 듯 뇌리를 스친 불편한 진실만 빼면 “아주 발전적이었던”.
늘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뇌리를 스치는 득도 같은 건 원치 않았다. 톡 치면 툭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상태로 15년쯤 살다 보면 나 자신의 무너지는 순간 정도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진다.
15년 간 유지해 온 아슬아슬한 중도의 상태도 어느 날 퇴근길의 Fix You 2분 30초의 낭떠러지에서 구르기 시작해 3분 30초에서 결국 무너질 수 있다는 것쯤. 이마저도 나는 예상했다.
그리고 인정한다.
나는 늘 언제나, 결핍된 상태였다.
단순한 한 끼의 허기짐이든, 인생의 큰 사건 사고에 의한 결핍이든 결국 결핍의 범주이다.
결핍: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나는 원초적인 허기짐이라는 결핍에 매우 익숙해서 삶의 커다란 결핍도 같은 방식으로 견디려 했던 것일까.
기억도 안나는 그 언젠가의 젤 처음엔 아침과 점심을 굶었을 때 배가 고팠었겠지. 그러나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고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어린 나에게 식사 시간을 거르는 것은 부족한 시간을 채우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그때그때 충족을 해줘야 했던 것일까.
밥 한 끼의 작은 결핍에도 나는 최선을 다하여 나를 보듬어야 했던 것일까.
배가 고픈데 굶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고 해서, 피투성이가 된 집안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아닐 텐데.
나 자신을 갈아 넣고 작은 결핍들을 쌓고 쌓아서, 결핍에 무뎌진 꽤나 담대한 내가 되었지만, 그리하여 나는 배가 고픈 것과 삶의 커다란 결핍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평범한 어느 겨울 월요일 밤 11시, 결국 나는 배가 고픈 것인지 삶의 결핍에 소모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coldplay의 Fix You를 매우 크게 틀어둔 댕댕~ 울리는 차 안에서 갑자기 득도한 사람처럼 차를 멈췄다.
비상등을 켜고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른다.
배가 고픈데 잘 참았다고 해서 성숙한 어른이 된 건 아니다.
마흔이 넘어 밤늦은 퇴근길에 갑자기 차를 멈추고, 밥 한 끼의 결핍으로 초래된 현재를 원망하지 않으려면 나는, 우리 모두는 오늘의 나를 최선을 다해 보듬어야 한다.
최대한 사려 깊게 진심을 담아 나에게, 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애정 어린 말
“ 밥은 먹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