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2025년 8월호>

by 성해인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좋아한다'의 개념을 다시금 적립하는 요즘이다. 누군가 하는 수 없이 주어진 삶을 살고, 그 안에서 변화를 꾀하기에는 여유가 없거나 용기가 없을 수 있다. 의지와 별개로 삶은 꼭 반복되고, 어느 일상이 각별히 좋아서라기보다 그 안에서 틈틈이 행복을 찾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지 못할 것이고, 무너진 삶 가운데 행복은 더욱 희미할 것이므로. 다들 제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당장 너무 좋아서, 없어서 못 살 것처럼 구는 것만을 좋아한다고 표현하지는 않더라.


꿈을 좇을 때의 하루는 활력이 있다. 그러나 꿈이 삶이 되고 나면 그것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성장이고 성취이지만, 동시에 나를 팽창하는 과정은 아프고 외롭다. 하나, 누구에게 호소하기엔 어려워 그 마음을 홀로 삼킬 뿐이다. 이제는 이야기를 펼치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 관심이 곧 돈이 되는 하루를 살고 있다. 바라던 삶이었다. 내가 누리는 일상은 다른 누군가의 꿈이자, 과거의 나의 동경이다. 그것이 설령 당장 탈출하고 싶은 일상이라 하더라도. 그래, 얼마나 좋은 하루인가. 내가 여기에서 무너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셈이다.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마셔본 적 없는 술잔을 괜히 기웃거리고, 담배를 피워볼까, 게임을 해볼까, 친구를 찾아볼까, 연애를 해볼까...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눈을 뜨면 일을 하고, 일이 밀린 채 눈을 감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체력이 없고, 새것에 흥미를 붙이기엔 시간이 없다.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꾸준하게 몰아넣는다.


그런 하루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오늘 주말은 그냥 무작정 서울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방향으로든 일터를 벗어나고 싶었다. 무턱대고 지하철에 몸을 실어 어디로든 떠났다. 야놀자를 켜서 호캉스를 검색하고, 오마카세를 찾아보고, 홍대의 팝업 스토어를 기웃거렸다. 통장에는 적당히 돈이 있었지만, 정작 마음이 무엇 하나 내키지 않았다. 나는 백수처럼 홍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괜히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사 먹고, 괜히 빈티지 구제샵에 들어가 옷을 껴입었다. 지금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어느 카페에 들어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았다. 어느 곳이든 들어가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갈 곳이 없었다. 작업실에서의 삶이 당장 너무 행복하다기보다는 그 외의 삶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습관처럼 또다시 펜을 쥔다. 단 하루라도 어떤 이야기를 남겨야 하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할 말은 늘 넘쳤다. 외로움조차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글은 너무 잘 나왔다. 지금 이 글을 재빨리 완성 짓고, 조금씩 가사도 적었다. 그리고 문득 결론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 삶을 당장은 벗어날 수 없다고. 지친 하루를 해결하거나 치유하는 데까지 닿지는 못한 채 그저 이렇게 기록하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오늘 하루를 쓴다는 것은 내일을 위한 치유가 아니라, 오히려 또다시 반복될 피로와 고독을 미리 받아 적는 일에 가깝다. 이 글을 비롯하여 짧게나마 호소하자면, 매일 새벽 어김없이 고요가 찾아오고, 그 안에서 나는 홀로 머문다. 고요를 인지한다는 것은 무지 두려운 일이라 마음을 소란스럽게 해야만 한다. 온전한 쉼도, 온전한 지침도 없이 하루를 유지하는 셈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기록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듯, 여전히 글을 쓰고 노래를 적는다. 버거운 시간을 기록하는 이 습관 덕분에 겨우 버티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마 나는 이 상태에서 당분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지금의 나로서는 또 하나의 일상이고, 그것마저 써 내려가야 할 이유가 된다.

카페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보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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