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트륨 Mar 24. 2020

트랜스퍼 제안에 흔들리는 외국계 직장인의 심경변화

싱가포르로 떠나는 직장인 나트륨씨 #1

나이는 갓 서른, 직장 생활은 6년 차에 접어든 2020년은 정말 예측 불가능하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로 이직을 결심하면서 급물살을 탔달까... 최종 결정은 2주 정도 전에 결정된 일인데 이것도 결정되기까지는 5개월 정도 걸렸다. 국가번호 +82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굉장히 답답하기 짝이 없는 절차들이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남겨두면 남들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나에겐 지난날의 고민이 담긴 일기가 될 것 같아서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뜬 구름 잡기 같았던 첫 오퍼

첫 제안은 갑작스럽게 받았다. 밑도 끝도 없이 싱가포르 지사에서 날 데려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시기도 정해지지 않았고, 어떤 팀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 채 내 의향만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외국계 미디어 대행사인데, 싱가포르는 한국을 포함한 APAC의 헤드쿼터(HQ)로 구성원도 더 많았고,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헤드쿼터로서의 관리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더 있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주 막연하게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아주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한 것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그 어떤 업데이트도 없었기 때문에 나 또한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다.


두 번째 제안도 마찬가지로 나의 의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말 가고 싶냐고 재차 여쭙기에 그렇다고 했고, 정확한 시점으로 부동산이 정리되는 8월 자를 던져두었다. 그러면서 나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간 관리자 역할로 보내주겠노라라고 말하기에 뜻밖이라 생각했고 내 커리어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기에 그 또한 확실하게 말해두었고 희망만 가득 찬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래도 두 번째 미팅에서는 나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수인계를 준비하라고 했기에 아 정말 가는 건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뭐지 싶었던 텅 빈 오퍼

두어 달 정도 지났을까... 한참 더웠을 때 나눴던 이야기가 잊힐 무렵이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암흑 같은 연봉협상에 한참 실망해서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팅룸으로 소환당했다. 결론은, 내 연봉 인상률이 싱가포르로의 트랜스퍼 때문이라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싱가포르로 가면 동일 연차 대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연봉을 줄 것이라고 단언하며 사탕발린 말을 했다. 싱가포르로 가는 이야기는 발전된 게 하나도 없고, 여전히 백지상태인데 이런 말을 듣노라니 아 그렇구나가 아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트랜스퍼를 이유로 내가 지난해 뼈 빠지게 일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이때부터 나도 주변인들에게 싱가포르의 상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조금이라도 더 현지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낮은 연봉 인상률이 내 트랜스퍼 때문이라는 데에 사실 여부를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2019년을 마무리하기 직전이었던 12월, 팀 회식 중에 갑자기 싱가포르 직원에게 연락을 받았다. 잠깐 화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기에, 준비 없이 들어간 화상 미팅에서 기습 잡인터뷰를 당했다. 내 경력과 스킬에 대해서 설명을 듣길 원했고 질문들이 쏟아졌다. 당시 나는 프로젝트 중반이라 너무 바빴던 터라 정말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갔기에 조금 민망할 정도로 대답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다지만,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했지만 날 것의 영어 실력을 공개당했고 정말 쪽팔렸다. 그렇기에 그 팀에서 나를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직원은 내가 트랜스퍼될 팀의 팀장이었고, 나에게 팀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었고 나는 이야기를 할수록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내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 뚜렷하게 의사표시를 했고, 중간 관리자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기에 그 싱가포르 팀장이 말한 내 전혀 다른 직무와 전혀 다른 직책이 당황스러웠고, 이어 바로 그다음 주 광고주를 만나서 대담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는 포인트에서 속으로 질색팔색 했다. 첫째로 나는 구두로 들은 내 직무와 직책이 성에 차지 않았고, 둘째로 연봉이나 트랜스퍼 조건에 대해서도 하나도 듣지 못한 상황인데, 광고주를 만나라니... 나한테 선택할 권한은 없는 건가 싶었다.


첫 번째 오퍼 거절

사실 싱가포르 팀장과의 면담에서 내가 받을 조건도 모르고 광고주를 만날 수 없다고 거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거절을 해도 되는지가 애매했고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온 게 화근이었다. 내가 싱가포르로 트랜스퍼되는 것은 사실, 한국에 있는 나의 상사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인데, 그들에게 말하면 뭔가 해결방안이 생길 것 같다는 내 안일함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먼저 만나고 거절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을 듯했고, 정말 이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분명할 정도로 본인들의 일에만 바빠 보였다. 이래저래 민폐만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질 않았고, 이때부터는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싱가포르 팀장에게 연락해서 아직 오퍼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것을 결정하기 힘들고, 이러한 명분으로 광고주를 먼저 대면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히 화를 냈다. 이미 광고주와 일정까지 잡은 상태에서 미팅을 취소해야 하니, 나로서도 어쩔 수는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확실하게 절차를 마무리 짓고 광고주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맘에 안 드는 내색이었지만, 연봉도 모르고 덜컥 만났다가 후진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치기는 싫었다. 싱가포르 팀장도 끝내 이해해 주었고, 인사팀에 이 부분에 대해 빠르게 확정해서 전달해 달라고 종용해주었다. 드디어, 내가 목소리를 내자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새해를 맞았다. 싱가포르에 가는 건지 마는 건지 고민에 고민을 더하가다 해가 바뀐 샘이다. 1월 29일, 인사팀에서 미팅 요청을 받았다. 최종 금액은 아직 승인 대기 중이지만 이러이러한 내용이라고 했다. 요약해서, 한국에서 받고 있는 연봉과 큰 차이가 없었다. 100만 원 차이도 안나는 연봉을 듣고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 관리자 직책도 아니었을뿐더러 직무도 전혀 달랐다. 생각해보고 최종 결정을 해달라고 하기에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no라는 대답을 정해두었으나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뉘앙스로 3일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 (아마도 다음 포스트에서 소개할) 도시 간 생활수준 차이도 확인해보고 주변인들에게 의견을 구해도 살인적인 월세를 자랑하는 싱가포르에 연봉을 그 정도 올려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고민(을 얼마 하진 않았지만) 끝에 인사팀에 거절의 메일을 보냈고, 화상 미팅으로 왜 거절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덧붙였다. 조건과 커리어 패스가 맞지 않아 거절하는 것이라 설명했고 향후 다른 자리가 나게 되면 한번 더 고민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던졌다. 인사팀에서는 장담할 수 없으나 참고하겠다고 말했고 이렇게 첫 오퍼는 거절을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2탄에서 to be continu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