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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트륨 Mar 25. 2020

반복되는 거절과 오퍼의 연속

싱가포르로 떠나는 직장인 나트륨씨 #2

오퍼를 거절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부동산 정리부터 가전제품들까지... 가게 된다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막연함이 거절하고 나서 씻어낸 듯 사라졌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회사에서도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한 번도 서울을 떠난다는 걸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주변인 중엔 몇몇에게만 고민 상담식으로 털어놨다. 그래도 회사의 윗 상사들은 이 결정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가지 않겠노라고 말하고 마무리되는 듯했다.


다시 시작된 소환 파티
 

한 보름 정도 지났을까, 내가 오퍼를 거절한 게 싱가포르 쪽에도 공유가 되었는지 다시금 미팅룸에 소환되기 시작됐다. 나는 분명하게 내 커리어 패스와 맞지 않고, 조건도 현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알렸다 생각했지만, 내 부족한 영어로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것인지 그 거절 이유에 대해 더 명확하게 설명해주길 원했다. 스트레스였다. 싱가포르 쪽 직원들과 이야기할 땐 오히려 편했지만, 한국에 있는 상사들과 이야기할 때는 불편했다. 아무래도 내 낮은 연봉협상 상승률을 트랜스퍼로 납득시키려 했는데, 실제 조건이 그것을 설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퍽 난감했겠지. 실제로 대면해서 이야기할 때, 발을 빼려는 뉘앙스가 몇 번이고 느껴졌다. 불편하고 이제 그만 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임원이 미팅을 요청했다. 나와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고, 딱 한 번 출장 왔을 때 식사를 같이한 적도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수락했다. 알고 보니 그가 내 트랜스퍼를 주도해왔다고 했다. 그 30분 정도의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 식사 이후부터 줄곧 내 트랜스퍼를 요청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내 거절이 너무 아쉬웠다고 말하며, 어떤 부분에서 거절을 했는지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고, 현실적인 조건보다는 커리어 패스를 이유로 설명했고 그는 한국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들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더 넓은 시장, 더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다면 결국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고 포트폴리오의 확장이라는 논리로 설득했다. 그 방향으로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임원의 위치에서 내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바로 꺾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고민해보겠노라 했다.


다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정말 1년 투자라고 생각하고 짧게라도 다녀오는 것이 좋은가 고민했다. 잠도 못 자면서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어려운 부분을 중점으로 고민했고 남자 친구에게도 터 놓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를 사는 나에게, 저축액도 많지 않은 나에게 싱가포르로 가는 게 맞는 건지 물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질수록 내 발목을 잡는 건 단 한 가지 문제였다. ‘돈’. 이 정도의 연봉 인상을 가지고 싱가포르로 가는 건 굳이 외국에 가서 궁색 맞게 살면서 내가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 오히려 단순해졌다. 밥 벌어먹기 위해 일을 하는 건데, 밥 먹는데 지장을 줄 정도로 물가가 비싼 싱가포르에 여행도 아닌 ‘일’을 하러 가면서 부족하게 사는 건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가자마자 후회할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거절

메일을 썼다. 내 상황을 솔직하게 담은 메일. 정말이지 고민에 고민을 더했지만, 현실적인 덫을 무시하기에는 올해로 서른을 맞은 나이가 걸렸다. 서른이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서른이라는 관문을 지나며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환경이 좋았다. 그런 부분들을 포장 없이 설명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언제든 나는 다시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끝맺었다. 어찌 됐든 열린 결말을 암시하고 싶었기에 기왕이면 조금 더 나은 조건을 받거나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었다. 이렇게 마무리하고 나니, 또 한 번의 후련함이 찾아왔다. 현실적으로 인사팀에서도 연봉 조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나 역시 크게 기대하는 건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확실하게 인사팀에서 오퍼를 받고 내게 주어진 결정의 시간은 단 3일이었고 시간을 모두 쓰고 나서 오퍼를 거절했다. 시간이 지나 싱가포르의 임원이 다시 오퍼를 주고 내게 준 시간은 5일이었다. 기다림은 길었고 최종 판단까지 걸린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나의 거취가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한국팀 내에서 난 이미 조직 밖의 사람이 돼버렸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일은 몰려오고 있고 내가 있든 없든 간에 일은 돌아가야 하니까. 트랜스퍼 관련 논의가 오가는 동안 한국팀 내에서의 조직 변동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내가 최종 결정을 하고 난 뒤에 전사 발표되었다.


소외감

작년에 내가 맡아 운영했던 프로젝트는 다른 매니저가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한낱 대리인 나는 두 매니저들의 이름 아래에 적혀있었다. 애초에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를 매니저급으로 배정하고 심지어 줄기차게 말했던 인력 충원은 그제야 매니저 밑에 ‘내 이름’으로 들어가 있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작년 내내 혼자 낑낑대며 끌고 왔던 프로젝트가 나와 논의도 없이 담당자를 변경한 것도 우스운데 그 밑에 들어가 있는 내 이름을 보고 나니, 화가 나는 게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팀장에 대한 배신감이 치밀어올랐다. 내 거취가 불분명했던 것은 맞지만, 가지 않게 된 이 상황에서 별다른 변동 없이 공고가 난 것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참았어야 했는데) 직속 상사에게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돌아온 답은 하나였다.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입사 이후로 프로젝트에 치이면서 만들어온 내 입지는 이미 뺏겼다는 것을. 이미 트랜스퍼 건으로 몇 달 동안 지친 나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트랜스퍼를 받기까지 프로젝트를 전전하며 죽기 살기로 달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직속 상사와 나의 사이에는 끈끈한 전우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팀에서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했다면 트랜스퍼를 거절했어도 크게 흔들림이 없었을 테지만, 그 전우애는 전쟁 같았던 업무를 치워내며 쌓인 것이었고 그 마저도 트랜스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천천히 소실되고 있었음을 몰랐다. 내가 떠나고도 그는 이 조직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할 사람이기에 내 신세를 토로해봐야 푸념이 되고 말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의존할 곳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더 구차하게 군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신세한탄을 해버리고 말았다. 신세한탄의 끝은 결국 뻔하다. 연애 문제의 끝은 헤어짐이듯, 직장에서의 문제는 퇴사만이 답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충동적이었나 생각도 들지만, 당시에는 이 괴로움이 너무 커서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말했다. 그만두겠노라고.


3탄에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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