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뚫고 날아간 싱가포르 #2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맞이한 스왑 테스트(swab test) 당일. 여권과 IPA 레터를 챙겨 그랩을 불렀다. 지정된 병원은 Jurong Medical Center! 거주하고 있는 탄종파가에서는 꽤나 먼 곳에 위치한 병원이었다. 이 왕복 교통비는 회사가 커버해주는 비용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그랩을 타고 갔다. 엄청나게 맑은 하늘과 거리의 사람들을 보니, 이제서야 싱가폴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확실히 들기 시작했다. 갇혀만 있다 보니 거리적으로 멀어진 것은 실감 났지만, 일이 바빠올수록 그냥 감옥에 있단 생각이 들지, 딱히 외국이란 느낌은 안 들었는데 6년 전 여행으로 왔던 곳을 택시를 타고 지나치면서, 처음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도시 싱가포르의 매력을 택시 창문 너머로 감상하다 보니 머지않아 병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Swab test?” 라고 묻는 스테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서 사이사이 들어가다 보면 여권과 체온을 체크하는 곳이 나온다. IPA레터는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었겠으나, FIN 번호를 암기하지 못한 나에게는 중요한 준비물!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주소와 전화번호 여권 등 체크하는 게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정된 인원이 검사를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4-5명의 서류 검사 스테프가 있고 한 줄로 서서 대기하는 구조인데 녹색 여권이 많이 보여서 뭔가 내적 친목이 생겼다. 한국인들... 저도 한국인이에요... 서류 확인 작업을 마치면 나를 인도하는 스텝을 따라 본인 확인을 한 차례 더 하고, 생각하는 의자 같이 멀뚱하게 있는 의자에 앉는다. 뭔가, 한국에서 보던 유리 보호막에서 손 두 개가 나와서 검사하는 그런 것을 예상했는데 의자에 앉아있으면 검사하시는 분이 와서 면봉을 쑤시는 그런 구조였다.
검사를 하기 전에 계속 물어보는 것은, 코 수술을 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코피가 자주 나는지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혹시 모를 과실을 피하기 위해서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주 기다란 면봉을 가져와서 각각 10초를 세고 뺄 거라며 알려주었고, 설명을 마치자 오른쪽 코부터 쑤욱 들어왔다. 이 느낌은... 비염 치료의 느낌.... 코에 쑤신 막대와 느껴지는 이물감...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한번 튕기듯이 스와빙하는 것. 제대로 검체를 확보하기 위해서 퉁퉁 튕기는데 그게 조금 불편했다. 오른쪽 코를 마치면 왼쪽이 바로 진행된다. 생각보다 참을만했고, 굉장히 빨리 진행돼서 다행이었다. 검사를 마치면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쓰고 건물을 빠져나가면 끝!
돌아오는 길에도 못내 아쉬워서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름의 외출 기념 인스타그램도 올리고 짧은 외출이 끝이 났다. 돌아와서는 일이 너무 바빠서 다시 일에 몰두! 밖에 조금 나돌아 다녔다고 저녁에는 허기가 져서 추천받았던 포케 샐러드를 주문했다. 같은 빌딩 1층에 있는 포케 집인데... 3층에서 그랩으로 주문을 했다. 아주 격리기간 최고의 호사가 아니었을까... 음식을 가져다준 그랩 드라이버의 메시지가 꽤나 행복해 보였달까. 먹고 나니 배가 고픈 듯 안 고픈 듯 애매하게 부여잡고 있는데 일을 함께 하던 싱가포르 직원 중 한 명이 나에게 저녁 식사를 보내준다고 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2년 내내 함께 일한 친구인데, 입싱 기념으로 미슐랭 1 스타이자 자기가 꽤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어떤 메뉴가 올지 너무 기대 만발하면서 집에 물을 포함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식료품 주문을 시도했다.
레드마트(redmarts)가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앱이었는데 Lazada라는 앱을 깔면 그 안 있는 쿠팡 프레시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60 이상 주문 시 무료 배송이라 그동안 먹고 싶었던 라면과 햇반, 맥주 그리고 물, 시리얼과 우유 등을 사니 금세 가득 찼다. 그리고 결제!하니 오류 화면이 뜨면서 최종 결제가 되지 않았다. 여러 번 다시 설치도 해보고, 로그아웃도 해봤지만 결국 주문을 할 수 없어서 나의 직속 상사에게 SOS를 쳤더니, 그런 상황이라면 푸드판다(foodpanda)를 써보라고 추천해줬다. 배송은 보통 1-2시간 내로 되기 때문에 더 간편하다고 해서 설치하고 보니 살짝 비싼 가격에 망설여졌지만, 당장 물이 없는 상황이라 바로 주문! 그리고 맥주 등등 원래 사려고 계획한 것들까지 구매 완료. 배송 현황도 쿠팡 이츠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편리했다. 결제 후 도착까지 한 30분 정도 걸렸다. 엄청 빨라... 아마도 임시 숙소가 탄종파가에 위치해서 배송 시작한 곳과 매우 가까웠던 것 같다. 이렇게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나니 뭔가 행복하고 든든했다.
7시 30분 쯔음, 나를 위해 주문해준 미슐랭 1스타 음식이 도착했다. 샤오롱바오와 고수가 올라간 덤플링! 그리고 짜장면(Bean paste noodle)이라 내가 주문해둔 맥주와 아주 환상적인 매치였다. 내 격리 기간 중 이렇게 푸지게 먹은 날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고수를 싫어하긴 하지만, 향이 덤플링과 너무 잘 어울렸고, 살짝 걷어내고 나니 먹을만해서 맥주와 함께 신나게 먹었다. 보내준 직원에게 인증샷도 보내고 너무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메시지도 보내 두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의 어머니가 음식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시고, 그 분야로 일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어와서 싱가포르 사무실 내에서 아주 소문난 미식가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음식도 정말 맛있고 오래간만에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할 만큼 과식했다. 그래서 잠도 아주 잘 잤다! 이후로 저녁 식사는 꼭 챙겨 먹었는데 김치가 너무 그리워져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도 주문해봤는데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너무 단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김치와 함께라면 뭐든 맛있으니까.
격리 종료를 이틀 정도 앞두고, 가장 시간이 안 간다고 느꼈다. 나갈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인지, 왠지 모르게 그동안 애써 무시했던 시간의 개념이 돌아와서 날 괴롭혔다. 토요일부터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안내받았기 때문에 목요일에 주요 일을 마친 그 이후부터 시간은 정말 기어가는 듯했다. 접었던 게임도 다시 켜고 미뤄왔던 임무(?)도 다했는데 그래도 아직 나갈 날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다시 첫 날로 돌아간 것처럼 시간의 감옥에 갇힌 느낌이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도 음성이라고 나와서 이제 나가도 되는 거 아닌가!라고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뻔했지만 흥분을 가라 앉히고 기다렸다.
격리 종료 12:00 PM...인줄 알았지?
그렇게 토요일을 맞이했다! 뭔가 이상하게 날이 꾸리꾸리 하더니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져내리는 아침이었다. 격리 내내 5분-10분이면 그치던 비가 3시간 내내 쏟아졌고, 우산도 없는 나는 약속 장소에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원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을 식당에서 만나자고 해두고 비가 제발 덜 오기만을 기도했다. 격리 종료를 알리는 신호인지, 팔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무겁게 손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격리 종료를 축하하는 뉘앙스의 문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평화롭게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랩을 불러서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야지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아주 친절해 보이는 드라이버는 주말의 오차드에 가기 싫었는지 뭐라고 핑계를 대면서 저기 앞에서 내려주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설마 하면서 그를 믿었고, 어떤 건물 앞에서 내렸는데... 오차드까지는 2개의 대로를 건너야만 했다. 비도 오는데. 우산도 없는 나를 middle of nowhere에 내려준 것이다. 욕을 바득바득 하면서 별점 1개를 날리고서 루프가 있는 곳으로만 최대한 걸었는데도 2개 대로를 건너야 하다 보니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꽤 먼 곳에 내려주고서 요금을 다 받은 게 아주 괘씸했다. 이렇게 인생 교훈을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고 약속 장소로 찾아갔다. 이상한 건물에 들어갔다가 옥상까지 찍고 다시 내려가고... 14일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나에게 타지에서 길 찾기란 어려운 미션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도착한 식당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직장 동료와도 인사를 하고, 싱가포르에 오기 전부터 알던 친구와도 인사를 나눴다. 음식도 너무나도 훌륭하고 이야기도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직장 동료네 집으로 가서 못다 한 수다를 떨고 있는데, MOM으로부터 격리가 내일 종료된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문자를 받고는 소름이 쫙 끼쳐서 뭐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싶었다. 분명 인사팀에서 미팅을 할 때 토요일 12시부터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뭔가 계산 착오가 있었는지 MOM에서 보낸 문자엔 일요일부터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계를 탈착 하기 위해 저 머나먼 어떤 곳으로 내일 오전까지 가라고도 연락이 왔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보통 격리 종료 전에 연락이 올 텐데, 안 오는 걸 보고 아 안 오나 보다 했던 내가 멍청했다. 그 문자를 받고 나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고, 인사팀에서 날짜를 지정해준 메일도 있어서 크게 걱정은 안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충전을 안 해서 이미 꺼진 시계는 여전히 내 팔목에 채워져 있었지만, 핸드폰으로도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피셜리 일요일을 맞이해서 시계를 풀러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어제완 다르게 날이 맑고 더워서 멀리 가야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지하철로만 한 1시간을 가야 하는 말레이 국경 인근에 위치한 Yishun... 싱가포르 정부 덕분에 방방곡곡 잘 돌아다녔지 뭐. 가장 가까운 역인 레플스 역으로 가서 이지링크 카드도 구매해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싱가포르 지하철 MRT에 올라탔다. 중심지를 벗어나니 비교적 한적한 동네를 지나 Yishun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도 버스를 타던지, 택시를 타던지 해서 지정된 장소로 가야 했다. 나는 그래도 길을 잘 찾는 편인 길치라고 생각했는데 운전석과 도로 교통이 모두 한국과 반대이다 보니 어느 쪽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지 애매하고 그랩을 어디로 불러야 하는지도 애매했다. 그래서 길에서 택시를 잡아서 탔는데... 제길, 신용카드가 된다고 뻔히 쓰여있지만 캐쉬 온리라고 버팅기는 기사를 만났다. 이래서 그랩~그랩 하나 보네요. 다행히이지링크를 구입했기 때문에 잔돈이 있어서 지불할 수 있었지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내가 카드만 갖고 다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어도 잘 안 통하는 택시 기사와 언쟁하고 싶지 않아서 요금을 지불하고 내렸다. 시계를 제거하고 나서는 그 건물 로비에서 바로 그랩을 불렀다. 아마 내가 싱가폴에서 다시 street hire 택시를 타는 일은 없을 듯하다.
시계도 제거하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14일 동안의 격리는 공식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