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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트륨 Apr 04. 2020

EP 비자 승인과 현실의 습격

싱가포르로 떠나는 직장인 나트륨씨 #5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재택근무가 한창이다. 싱가포르 트랜스퍼 최종 결정은 대부분 재택근무 중 이루어졌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반에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왔을 때만 해도 그냥 서로 조심하자 수준이었는데, 한국과 싱가포르 모두 나아질 기미가 나아지지 않고 계속해서 하늘 길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비자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은 비자 발행을 아예 중지하기에 이르렀고, 오는 4월 미국으로 나가서 잠깐 연구하기로 한 친구는 비자 인터뷰와 출국을 며칠 앞두고 계획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서울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도시 국가임에도 감염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얼마 전 락다운(lock down)이 선언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놀랍게도 17일에 신청된 비자 application이 일주일 만인 24일에 approval letter 받았다. 싱가포르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WP 비자의 연장이 거부된 경우도 보였고 3주가 지나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적잖이 걱정했었다. 아직 국가적으로 외국인의 입국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고 언제쯤 개선될지 가늠이 불가능한 '바이러스', 즉 자연재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HR 담당자와는 최종적으로 입국이 가능한 시점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하였고 일단 6월 정도로 조정해 두었다. 비자가 나온 건 어떻게 보면 내가 떠나는 게 한번 더 확정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게 될 상사와 간단하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연락했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더 심도 깊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우선 4월부터 상사와의 주간 미팅을 통해 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차차 인계받기로 했다.


제일 걱정했던 비자가 나오니 더 실감이 나기도 하고 막상 다가올 미래들이 내 꿀잠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때문에 체력을 충분히 쓰지 않아서 그런 건가...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오는 건 물론이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초등학교 동창들 소식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현실의 습격

부동산도 알아보기 시작해야 하는데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서 조금 찾아보다가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주 살인적인 월세를 자랑하는 싱가포르. 렌트를 조금이라도 절약하려면 다른 사람과 셰어 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룸메이트와 산지 어언 4년이 다되어가는데 싱가포르에서 가서까지 셰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유난스럽게 까다로운 화장실 청소를 잘해줄 외국인 룸메이트라... 한국에서도 찾기 힘들었는데 싱가포르 바닥에서 찾기는 아주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원룸 형식의 ‘스튜디오(studio)’ 형태를 찾아보았는데 지인에게 추천받은 ‘탄종파가’ 지역의 스튜디오는 보통 SGD $2,000 정도... 싱가포르가 아무리 작은 국가라고는 하지만 이 탄종파가부터 내가 근무하게 될 곳까지는 환승 없이 가장 빠르게는 40분 정도 걸렸다. 한국에서도 30분 내로만 다녔는데 아침마다 매일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지루했다. 그래서 회사 근처로 알아볼까 하고 부동산 앱에서 MRT 스테이션을 ‘다운타운’ 근방으로 알아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앱의 로딩 화면이 끝나자마자 그만 알아봐야 했다^^. 이 외에도 큰 범주에서 주로 현지인이 거주하는 HBD(주공 아파트 같은 종류), Condominium으로 나뉘는데 부동산은 4월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하며 일단 껐다.


사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있었다. 이전에 언급했듯 싱가포르로 가는 게 결정되면서 회사에서는 나를 제외하고 올 해의 팀 구조를 확정했고, 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었다. 마침 재택근무 중이니 월급 루팡이나 해볼까 싶었는데 이 문제는 계속해서 나를 다시 찾아와 달달 볶아댔다. 대면 업무에서 제외시키는 건 기본이고 일단 업무 및 팀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받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곧 나갈 사람’ 신분이 된 것이다. 싱가포르 리로케이션 날짜도 확정되지 않았을 때부터 아주 굵은 선을 그어대는 회사를 보며 속이 상했다. 어쨌든 이 회사에 속한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일해왔고, 본인들 피셜 이 트랜스퍼로써 나에게 일말의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실 업무에서 배제되고 선을 긋는 것 까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팀의 인력이 빠지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이 쳐내기가 버거워지자 마치 내가 일을 안 하고 미뤘다는 뉘앙스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들이 있음에도 마치 한동안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대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무 담당자인 나만 뺀 단체 대화창에서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보고야 말았다.


이건 따돌림인가 싶었다. 재택근무 때문에 내가 괜히 오해를 하나보다 하고 넘어가려고도 했지만 나는 나대로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차 지긋한 어르신이 왜 그러실까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밉보인 게 있나 하며 마음 한편이 불편해왔다. 어차피 나갈 사람이 된 상황에서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도 없어 보였고, 나는 나대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겠거니 생각하며 비워내려고 노력하며, 차라리 재택근무인 게 낫다, 표정 관리 못하는 내가 이런 상황에 대면했다면 이미 몇 번이고 회의실로 불려 갔을 것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신경 쓰지 말자라며, 잊어버리자며 털어내 보았다.


의미 없는 노력이었다.

얼마 전 그룹장은 내게 퇴사일을 싱가포르 국 직으로 맞춰달라고 말했다. 마치 내가 퇴사 후 서울 어디 다른 동네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신규 인력 충원이 중단되어 인수인계자가 없으니 배려를 해달라는 이유였는데, 이 말에는 나에 대한 배려는 단 1g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인수인계를 정리하고 있었고 이미 몇 부분 마무리되었기에 신규 인력을 기다려서 내가 할 수 있는 인수인계가 뭔지도, 그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 내가 사는 집도 정리가 되어야 하고, 싱가포르 입국 전에 가족도 만나야 하는데 그것보다 인수인계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룹장의 말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그것이 ‘업무 외 의무’라고 말했다. 업무 외적인 업무면 업무 외 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수인계가 도의적으로 마지막 가는 길 아름답게 떠나기 위한 회사에 대한 배려이지, 언제부터 그게 법적인 명분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아직 어리게만 보여서 그냥 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그룹장은 다시 한번 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권고’했다. 그는 내가 정말 재택근무 기간 동안 업무를 태만하게 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참 답답하다.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항상 쿨하지 못한 관계가 생기곤 한다. 예전에는 내가 어려서 이런 대접을 당하나 싶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라고 여겼다. 나이를 먹고도 똑같은 일이 생기는 걸 보니 꼭 그게 이유는 아닌 것 같긴 하다. 결론은 내가 정치를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정치를 잘하는 게 규칙을 준수하고 일도 잘하는 질서의 수호자 같은 것이라면 내가 기어코 공부를 해서라도 정치를 했을 거다. 근데 보통 사내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일을 못한다. 관계성을 빌미로 삼아 힘이 나오는 구멍이 어딘지 살핀 뒤 박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보통 정치를 하려고 하고, 결과물이 아닌 입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어차피 회사를 떠날 나 같은 존재와 관계를 잘 닦아둘 필요가 없다. 옆팀도 아니고 다른 나라로 가버리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그저 ‘아랫사람’으로 대하면 될 일이겠지.


나는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해서 이런 짜증이 솟구치는 환경에서 계속 잘 참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월이 아닌 당장에라도 싱가포르로 가고 싶다. 아니면 이런 문제들에서 다 벗어나 차라리 퇴사하고 싶다. 할 말 다하고 내 할 일만 딱 하고 사라지고 싶다.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좁고 좁은 업계에서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안 맞추다가는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이고, 보통 정치를 하는 분들께서는 사람을 까면서 친해지기 때문에 그냥 더 얽히고 싶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환멸감만 늘어나는데, 차라리 이런 환경에서 외국으로 가는 게 내 개인적인 부분과 더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모로 따져 봤을 때, 일단 내가 현재 속한 조직은 답이 아니고, 떠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6탄에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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