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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10. 2022

시험기간인데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모범생'에 걸맞은 학생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선생님 눈에 좋은 학생으로 남고 싶어 당시 친구들이 다 바르던 틴트도 바르지 않고 다녔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은 무지 바르고 싶었다.) 친구들이 귀신같다고 좀 바르고 다니라고 해도 나는 '괜찮아'라고 답하며 괜찮은 척했다. 나는 연애도 하지 않았고(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이라고 하기에는 딴짓도 많이 하면서)했다. 


그 결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전교 2등을 했다. 이전에 전교 1등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내게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러 왔다. 나는 그 친구가 대단해 보였는데, 이제 그 친구 눈에 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때의 느낌은 꽤 짜릿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좀 잘하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적어도 반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는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내 별명은 '직각 의자'였다. 한 선생님께서 내가 늘 등을 펴고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지어주신 별명이었다. 얼마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많았으면 별명이 직각 의자였을까 싶다. 고등학생 때도 역시나 공부와 시험은 내 주요 관심사였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내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부한 것이 결과로 나오는 게 바로 시험 점수였다. 시험기간만 되면 나는 울었다. 공부를 하기 싫었는데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반 1등,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방긋방긋 웃으며 공부하고 집에만 오면 우는 아이가 되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던 어느 가을에는 시험기간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시험을 치지 않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었길래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대학생이 되면 시험 결과에 목매는 나의 성격이 조금 달라질 줄 알았다. 왜냐면, 내가 그리는 대학생활 속에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공부하는 모습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학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였다. 학점은 곧 내신이었고, 동아리나 공모전 활동은 곧 대외활동이었다. 차곡차곡 뭔가를 계속 쌓아나가야만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는 막연한 분위기가 깔려 있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지 감이 조금도 잡히지 않았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공부뿐이었다. 어떤 날은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체육 특기생이었다면, 음악을 아주 잘했다면, 그림에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정해진 길을 가는 사람들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당시 나는 정해져 있는 길이라도 좋으니 확실한 길이 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을 위한 공부는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뿌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공부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나로서는 아주 큰 결단이었다. 왜 그랬냐고 물으면 '너무 힘들어서요'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매일 수업 듣는 것도 힘든데 계획 짜서 공부하는 게 너무 버거웠다. 2학년 1학기 학교를 다니며 중도 휴학을 할까 수십 번 생각했으며, 학교를 자퇴할까 몇 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최후의 카드를 내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다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이번 시험에는 공부를 하지 말아 보는 거야.' 반쯤은 회피성으로 반쯤은 지치고 찢긴 마음으로 나는 시험 1주일 전에 결심을 굳혔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은 차근차근 다가왔다. 1주일 전, 5일 전, 3일 전, 2일 전... 마치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았다. 다만 기대보다는 불안으로 가득한 카운트다운이라는 점이 달랐다. 첫 시험 1주일 전부터 나는 불안해하기 시작했으며 2일 전에는 불안으로 손이 떨리고 토를 하고 설사를 했다. 이게 맞는 걸까? 시험을 아예 놓아도 되는 걸까?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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