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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18. 2022

저기요, 그 옷 어디서 사셨어요?

옷을 좋아한다. 옷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옷을 입어보는 것도 좋아하고, 사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엔 옷을 물물교환하는 마켓도 있던데 그런 곳이 있으면 옷을 빌려 입고 싶을 만큼 옷을 좋아한다. 예쁜 옷을 입고 밖에 나갔을 때 사람들의 은근한 눈빛('저 옷은 어디서 샀을까?')을 즐기는 편이다. 사실 그런 눈빛을 느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착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패션 센스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옷이 정말로 날개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 철 입고 말 옷을 사들이고 옷장에 넣어두고 다신 꺼내지 않는 일을 반복했던걸까? 


언젠가부터 예쁜 옷을 입고 나가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 뭔가 모를 우월감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입은 옷이 예쁘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월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깊고 깊은 열등감도 느껴졌다. '내가 입은 옷은 구려. 뭔가 이상해. 근데 저 사람은 되게 심플하게 옷을 잘 입었다. 예쁘다.' 웃긴 건, 내가 그 사람처럼 심플하게 옷을 입은 날에도 나는 나를 인정하는 대신 또다시 새롭게 부러워할 대상을 찾았다. '너무 심플한 건 별로지. 저렇게 약간 프릴이 들어간 블라우스가 예쁜 것 같아.' 끊임없는 비교의 루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루프 속에서 나는 제일 조그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혼자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저 사람은 저 옷을 어디서 샀을까?'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걸 물어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을 얻어도 나는 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게 눈에 빤했다.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에 있었다. 21살 때 읽은 글배우의 책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자, 이번에는 내가 싫어하는 신발이에요. 신발에 구멍이 났네요. 그럼 나는 어떻게 대할까요? 그 신발의 구멍을 누가 작게만 얘기해도 나는 굉장히 크게 들릴 거에요. 그냥 구멍을 작게 뭐라고 얘기해도 크게 들리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p.20)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은 '싫어하는 신발'과 닮아있었다. 다른 신발에 이리저리 채이고 진흙을 밟아 엉망이 되어도 '에구 고생 많았구나' 하고 닦아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신발. 내가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속상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너무 익숙해져있는 나는 오늘도 거리를 걸으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이 다 예쁜 옷을 입은 것 같은 환상에 취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군가에겐 너도 그렇게 멋진 사람들 중 한 사람일거야'. 맞아 맞아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군가가 아니고, 나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내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가끔은 나도 내가 답답하다. 이젠 좀 그만 비교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몇 년씩 비교의 루프 속에 살고 있는 나를 채찍질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오래 비교를 했다는 건 내가 그런 사람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걸 뜻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비교가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30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고 있을 나를 상상하면 끔찍하다를 넘어서서 무서운 감정이 든다. 나이는 한 해씩 변해가는 숫자의 합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 나의 변화가 성장이 아닌 정체나 후퇴를 향해 가고 있다면? 나는 적어도 7년 후인 30살에는 아이유가 했던 말처럼 '(나에 대해 잘 알아서)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건 그만큼 나만의 중심이 잡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외부로 향했던 나의 관심 더듬이를 안쪽으로 돌려 나의 마음으로 향하게 할 시간이다. 


-삐비비빅- 관심 더듬이를 돌립니다. 동의하십니까?


-당근 오케이다. 


오늘부터 물어봐줘야지. 지인아 너는 어떤 걸 하고 싶어? 어떤 음식을 먹을까? 언제 자고 싶어? 이런 사소한 질문들이 결국에는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문제가 발생해도 '어떡하지. 망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보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은 뭐지?'를 고민해야지. 주어는 '저 사람'이 아니고 '나'다. 단순하고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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