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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20. 2022

무엇을 안 하느냐가 중요해

시간은 빨리 흐르고 작은 일들은 큰 옷을 입은 채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는 요즘이다. 하루의 시작은 알람 소리를 듣고 다시 잠에 드는 것이다. 불안감에 휴대폰 시간을 확인해보면 나의 아침 루틴(물 마시고-아침 일기 쓰고-아침 챙겨 먹고-샤워하고)을 모두 할 만할 시간은커녕 당장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학교에 도착해 강의를 두세 개쯤 듣고 나면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다. 체력이 부족하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체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부재하는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놀이공원을 간다고 생각하면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는 사람이 나인데, 요즘엔 놀이공원이고 뭐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와중에도 삶은 착실하게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그 속에서 나는 갈 길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기도 하고 일부러 몸을 움직여 이것저것 하기도 한다.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식물들을 위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바닥을 밀대로 민다. 분명 이것들은 시작하기가 귀찮은 일들이다. 하지만 일단 하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걸 그동안 왜 미뤄두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고 귀여운 단순한 일들. 이 녀석들이 괴물 보스처럼 어마 무시하게 커져 있다는 걸 느낄 땐 내가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이다. 


요즘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샤워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더 자는 것을 선택하고, 미뤄 놓은 설거지거리가 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해보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해야 좋은 건 알지만 미래의 나에게 미뤄보기도 하고... 그런데도 아직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문득 김한민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 시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무엇을 안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깨끗한 존경, 이슬아, p.67)


덧붙여 김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이 시대에서는 누구나 절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택지와 가능성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스스로 능동적으로 절제하는 거요. '나는 적어도 이것은 하지 않겠어'" (깨끗한 존경, 이슬아, p.68)





'무엇을 안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 나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 자극은 너무 많고, 놓치지 말아야 할 정보도 많으며, 심지어 그런 정보들에 스마트폰으로 손만 뻗으면 접근할 수 있다. '너의 가능성을 펼쳐라'는 말은 이제 이 사회에서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가능성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탈이 나는 것 같다. 특히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것을 택했다가 쉽게 버리고 채우고 저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심적, 신체적 에너지는 바닥나고 있진 않은가? 


나에게서 불필요하게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관리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우선 나의 일상을 조금 떨어져서 들여다봐야 했다. 수업 사이 공강 시간에도 처리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랬구나. 쉬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굳이 그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나는 불안감 때문에 하고 있었구나.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뤄두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틈 날 때마다 일을 미리 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사실 공강 시간이다. 공강 시간에는 '쉰다'는 선택지도 있는데 나는 굳이 굳이 할 거리를 찾아서 노트북을 켰다. 피곤한 상태에서 글을 쓰니 효율도 떨어지고 타자가 여러 번 틀리기도 한다. 


오늘 나는 5% 정도 김한민 작가가 되어보려 한다. 이슬아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만은 하지 않겠어' 목록에 '쉬는 시간에 일하기'를 넣어본다. 쉴 땐 쉬어야지. 그래야 집중이 필요할 때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오늘도 나에 대해 알아가고 배우는 중이다. 나라는 사람에 관한 사전을 만든다면 어떤 단어와 정의가 들어갈까? 확실한 건 현재는 '쉬다'라는 단어의 정의가 '시간이 생겨서 미뤄놨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짐'일 것이라는 거다. 이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쉬다'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 (나만의 정의) '정신도 평안히 둔다'가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쉬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로 난 이제 낮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적절한 쉼을 취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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