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보다 하지 않으면 좋을 것
요즘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도 축 내려앉는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비가 오면 나 대신 울어준다고 생각해서 좋아했었는데 오늘 같이 춥고 축축한 날씨에는 날씨 탓을 하게 돼요. 오늘 아침엔 1개의 거짓말을 했고, 하나의 일에 가지 않았으며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다 3시 무렵에 일어났네요. 그리고 2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받지 않았어요. 사정이 있나보다,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날씨는 쌀쌀하지만 오늘은 뭔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좋아하는 서점에 가 사장님께 책 추천을 받는 일. 예전에도 고민이 있을 때 서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기가 막히게 적절한 책을 추천해주셨거든요. 요즘의 제 고민을 말씀드리자면, 다음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삶에서 기대되는 것이 없다는 뜻일까요? 제가 지닌 온갖 거짓말과 불성실한 태도와 차가운 눈빛을 떠올리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아져요.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있죠. 이미 ‘저’라는 구성원이 그 속에 속해있어 빠질 수도 없는 일들. 가끔은 저 없이도 세상이 굴러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 없이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고 말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뭔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일일 때 ‘저’의 존재감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한 명 빠지면 티가 확 나니까요.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를테면 누군가 나를 좋아할 때 혹은 누군가 나를 싫어할 때 인간의 육체는 직감적으로 그런 신호들을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알아차린 것은 제가 저를 싫어한다는 느낌이에요. 곧 공황 증상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걸 제 앞에 들이밀어도 저는 코웃음을 치며 그걸 릴스를 넘기듯이 넘겨버릴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내팽겨칠 것 같은 두렵고 끔찍한 기분이 들어요.
저는 억누르는 것도 잘해서 일단은 잘 누르고 있어요. 하지만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꾹꾹 눌러둔 것이 언제 다시 올라올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 감정을 무시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데, 지금 이 상태에선 어떤 일을 해도 그다지 흥미로울 것 같진 않네요. 뭘 하면 좋을지보다 뭘 하지 않으면 좋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 않으면 좋을 것
상황을 확대해석하고 일반화시키기. - ‘모든’ 일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다. 그 사람은 내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가진 것을 무시하기 - 그래도 나에겐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친 생각 - 생각이 많을수록 걱정도 커져가는 법이니까.
내 마음이 이끌리지 않는 일 하기 - 불안도가 커졌다는 건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 지금은 내 마음이 이끌리는 일을 할 때이다.
아무거나 먹기 -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해결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에게 해를 끼칠 것이 분명한 일 하기 - 인스타 가끔씩만 확인하고, 메일 카톡 등 메신저도 습관적으로 확인하지 않기.
쓰다 보니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이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선택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시대에서 ‘그만두고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도 오는데 오늘은 이 책이나 다시 읽어볼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