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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15. 2023

일단 일어서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서핑

매년 5월이 되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5월은 대학축제의 달, 그러니 ‘잘’ 즐기고 ‘잘’ 놀아야 할 텐데 한껏 들뜬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집 가고 싶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북적이는 인파, 길을 따라 죽 늘어선 푸드트럭들, 상기되어 있는 사람들의 표정, 공기를 감도는 부드럽고 뜨거운 열기 그런 것들 속에서 나는 지독히도 외로웠다. 엄청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비가 오면 마음껏 우울해도 될 것 같지만 해가 쨍쨍하면 함부로 슬퍼져선 안 될 것 같은 기분과 비슷했다. 분명 즐거워야 할 것 같은데. 


5월은 골골대는 달이기도 하다. 축제기간이 한바탕 끝나고 나면 나는 이상하게 늘 아팠다. 어떨 때는 머리가, 어떨 때는 목이, 온몸이 통째로 아픈 날도 있었다. 그렇게 축제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침대 속에서 골골대며 보내다 보면 내년 축제는 절대로 가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된다(그렇지만 내년의 나는 다시 ‘축제 재밌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겠지). 아픈 몸을 이끌고 자고, 일어나고, 학교 가고, 일하러 가고, 다시 집에 오고. 이 기본적인 루틴만을 지키면서 살던 나는 5월 말이 가까워지면 문득 억울함을 느낀다. 아니 뭐 했다고 벌써 5월이 끝나가? 또 6월이 되면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 한다. 5월에 재미나게 놀았으니 6월엔 힘내서 해보자 뭐 이런 마인드를 가져야 할 텐데 나는 5월에 즐기지 못했단 말이다.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에어비앤비 앱에 들어간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 싶다. 사람이 많지 않고, 자연이 있고, 바다가 가까우면 더 좋을 것 같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 머릿속엔 익숙하고도 반가운 이름이 떠오른다. 좋아, 제주도로 가자! 


‘떠나요~제주도~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익숙한 브금을 부르며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는 독립서점 지도가 있을 만큼 서점이 많다. 책과 서점의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책을 멀리하고 싶은 날도 있다. 

“언니야 여기서 책 읽고 싶다는 생각 했쟤?”

같이 간 (친) 동생이 바닷가를 걸으면서 물었다. 

“아니.”

“어, 웬일이래. 책을 안 읽고 싶어 하고.”

“아무 생각 하기 싫어. 머릿속을 다 비워버리고 싶어.”

내 머릿속에도 컴퓨터처럼 휴지통 기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제주에서 만큼은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을 움직이라던 어른들의 말을 믿는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을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기분이 꽤 나아진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한여름, 제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전능감을 느낄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하기로 했다. 바로 서핑이다. 


분명 2년 전에 제주도에 왔을 때도, 1년 전에도 서핑 강습을 들었는데 매년 지식이 새로고침되는지 강습을 듣는 내내 새롭고 낯설었다. ‘서핑보드의 앞쪽은 노즈, 뒤쪽은 테일이라고 한다’ 이런 정보는 다 까먹었지만 내게는 더 소중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바로 처음 보드 위에서 일어서서 파도를 탔을 때의 짜릿함. 내가 생각보다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보드 위에서 중심 잡기를 잘한다는 점, 패들링(보드에서 일어서기 전 손으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보드 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파란 하늘,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바다가 있었다. 나는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포털에 들어간 것처럼 고요하고 잠잠해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다가… 확! 새로운 세계가 내게 물을 들이붓는다. 나는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었지만 비로소 숨을 쉰다. 태어났을 때 몰아쉬던 첫 숨 같다.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무섭지만 일어서 보려고 하는 게 중요해요. 아시겠죠?”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러분 지금 못 믿겠다는 표정하고 계신데, 일단 일어서면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맞아요, 한 번 일어서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서핑 강습을 신청하면 20분 정도 이론수업을 하고 1시간 정도 강사님이 보드를 밀어주는 코칭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놀면 된다. 이론수업과 코칭은 할 만했다. 강사님이 어느 파도를 탈지 다 봐주시고 보드를 밀어주셔서 우리는 신호에 맞춰 일어서기만 하면 되었다. 3년간의 강습으로 다져진 나는 손쉽게 일어선다.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파도를 타고 모래사장까지 간 나는 사뿐히 보드에서 내려 강사님과 사람들을 향해 샤카사인(서퍼들의 인사)을 보낸다. 그럼 샤카사인이 되돌아온다. 길고 무거운 보드를 다시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은 번거롭다. 그렇지만 지금의 번거로움이 나중의 기쁨이 될 것을 안다. 그러니 다음엔 또 어떤 파도를 타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보드를 끌고 간다. 


코칭이 끝나고 강사님이 가시면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분명 배웠는데, 코칭할 때는 잘 일어섰는데 보드에 엎드려 파도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좋은’ 파도를 타고 싶다는 생각에 ‘괜찮은’ 파도도 놓치고 만다. 이럴 땐 빠른 판단력이 중요하다. ‘저 파도 탈까 말까?’ 이러고 있는 동안에 파도는 어느새 나를 스쳐 지나간다. 일단 저 파도를 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재빨리 보드 위로 올라가 파도의 위치를 보며 패들링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패들링을 하다가 언제 일어서지? 패들링은 앞을 보고 하는 거니까 지금 내 뒤에 파도가 얼마큼 와 있는지 감이 안 잡힌다. 뒤를 슬쩍슬쩍 보면서 파도의 위치를 안다 해도 이때 일어서면 되는 건지 확신이 없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망설이고 있는 나를 뒤로하고 파도는 앞으로 간다.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끝난 기분이다. 경기가 3초 남았는데 선수 교환으로 필드에 선 느낌.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분명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되지? 아까는 분명 잘했는데… 보드를 끌고 들어가는 일도 성가시다. 또 파도를 놓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에 어깨는 축 쳐진다. 차가운 물에 슬슬 배도 아파오고 이제 그만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동생이 가짜 서핑을 해보자고 했다. 가짜 서핑? 그게 뭔데? 동생은 모래사장과 가까운 파도 위에 보드를 두더니 그 위에 냅다 엎드렸다. 그리곤 뒤에서 파도가 오자 잽싸게 일어섰다. 한 1초 동안 일어서 있더니 풍덩 하고 빠졌다. 나는 동생이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렸다. 모래사장과 가까운 곳에는 파도가 많이 치고 있었다. 저 깊은 곳에서 애매한 파도를 기다리지 말고 파도가 많이 치는 이곳에서 파도가 올 때 보드 위에 올라서는 것. 그것이 가짜 서핑이었다. 


패들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준비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가짜 서핑이었다. 가짜 서핑을 발명해 낸 동생이 천재 같았다. 나는 잠시 존경의 눈빛을 담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다 떠난 후에도 남아서 가짜 서핑을 연습했다. 진짜 서핑이 안 되니 가짜 서핑이라도 연마하고 싶었다. 그런데 해가 저물수록 파도가 세져서 가짜 서핑도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미역처럼 보드에 걸쳐진 채 온몸으로 파도를 타는 걸 택했다. 꿀렁꿀렁. 서핑은 쉽지 않구나. 뭐든 처음부터 잘 되는 사람은 드물지. 그래도 가짜 서핑 덕에 잠시 웃고 힘을 내서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이 좋았다. 8월달에 양양에 서핑하러 가자는 말도 주고받았다. 그사이 해가 지며 주위가 붉게 물들었고, 우리는 잊고 있던 배고픔을 느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우리는 각자 보드 하나씩을 옆구리에 끼고 보드의 엄청난 무게에 욕을 멈추지 않으며 서핑샵으로 향했다. ‘재밌었어.’ ‘다행이다.’ ‘언니야가 왜 매년 서핑을 하러 가는지 알겠어.’ ‘8월달에 또 가자.’ ‘그때는 예쁜 수영복 입자. 슈트 말고.’ ‘좋아.’ 이제 동생과 서핑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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