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 치고는 좀 넓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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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오전.
조금 추웠지만 예쁨예쁨 넘치는 버킹엄 궁 앞뜰 공원(=세인트 제임시즈 공원) 산책하고 온 이야기.
느긋하게 브런치를 배가 터져라 먹고 나왔습니다.
시계는 아직 오전 9시 반. 11시에 시작되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가기엔 시간이 많이 많이 남습니다만, 명당자리 가려면 최소 1시간 전에는 근처에 가서 자리 잡으라는 조언들이 많기에 조금 일찍 가 보려고 합니다.
카페 앞 공도에 주차된 맥라렌 720S... 후덜덜....
아니 왜 이런 차가 공도에 주차되어 있담? 바로 뒤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조차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자태... 이런 차는 주차장.. 아니 "프라이빗 개러지"에 고이고이 모셔놓고 "관상용"으로 사는 차 아녔어? 나는 공짜로 줘도 보관할곳도 없고 세금내기도 버거워서 못 가질 것 같구만.
암튼 한참을 넋을 놓고 차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 앞에 총총 먼저 가는 누이를 따라갑니다.
적당히 소복이 쌓인 낙엽, 운치가 있습니다.
도로에서 썩어가는 낙엽이 아니라면 가을철에 어느 정도 낙엽이 쌓이는 게 더 예쁘지 않나요? 깔끔한 도로도 좋지만, 아침에 쓸고 저녁에 쓸고 하루종일 낙엽만 치우는 환경미화원 분들이 때론 안쓰러울 때도 많거든요. 낙엽은 좀 둬도 예쁜데. 물론, 도심에서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 우수구를 막고 출입구를 더럽히는 상황은 피해야겠지만요.
다음 공식 일정은 원래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아직 시간이 좀 남은 관계로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버킹엄 궁전은 아래 안내도와 구글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사방이 엄청나게 넓은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근위병 교대식은 먼발치에서 "나도 봤다" 인증만 하면 될 것 같고, 남는 시간에 산책을 더 하기로 합니다. 연못과 함께 조성되어 있는 세인트 제임시즈 공원입니다. 왜 버킹엄 공원이 아닌고 살펴보니, 버킹엄 궁 바로 앞에 세인트 제임스 궁이 별도로 있네요. 고 앞뜰이라 그렇게 명명했나 봅니다. 버킹엄 팰리스 가든은 The Mall이라 불리는 중앙도로 뒤쪽에 있는 공원이네요.
결론부터 말하면, 근위병 교대식 관람보다 공원 산책이 27배 정도는 더 좋았습니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살살 떨어지는, 조금 쌀쌀했던 공원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고 심신이 많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 사이로 보이는 예쁜 성과 대관람차 런던아이.
눈으로 보고도 비현실적으로 예쁘다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근위병 교대식에 앞서 기마병이 사전 안전순찰을 하나봅니다.
기마병용 말이 엄청나게 커서 위용이 느껴집니다. 제주도 조랑말 세 배는 되는 느낌입니다.
세인트 제임스 호수에는 새들도 많이 삽니다.
큰 새 작은 새 종류도 많은데, 하나같이 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곁에 자주 가까이 옵니다.
아래는 Royal Horse Guards, 왕립기마병연대 본부입니다.
여행 시기를 잘 맞춰가면 기마병 퍼레이드를 볼 수 있는 날도 있다고 해요.
공원은 생각보다 매우 넓습니다. 공원 둘레만 2km 쯤 되니까요, 풀냄새 나무내음 느끼며 유유자적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호수 한가운데는 섬이 있고 그 안에 전통가옥도 보이는데,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이 적혀있네요. 집 앞에 텃밭도 보이는데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원을 걷다 보면 길 너머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 동상이 보입니다.
로버트 클라이브가 어떤 사람인지 위키에서 찾아봤습니다.
로버트 클라이브는 영국령 인도의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군인, 정치가, 귀족이었다. 18세에 동인도 회사의 사원으로 마드라스에 건너갔다. 이 무렵 인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세력 확보를 위해 서로 다투었는데,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무찌르고 영국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영국에겐 위인일지 모르나, 인도사람에겐 그저 적군일 뿐이겠어요. 인도인들 감정을 우리식으로 치자면 이토 히로부미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쯤 되려나요. 프랑스 사람들도 좋아하진 않겠어요. 암튼 이제 싸우지 맙시다. 폭력은 나쁜 거라고 배웠잖아요.
암튼 그건 그거고 낙엽 색깔 노랑 빨강 어우러지는 공원은 너무너무너무 예뻤습니다.
새들도 사람을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공원인데, 다람쥐 사촌 쯤 되는 꼬리뭉치 튼실한 설치류도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몸을 오똑하게 세워 도리도리 하고 있는 예쁜 모습을 찍어주려 했지만 어찌나 바쁜지 잠시도 가만있질 않아서 모델사진 촬영은 실패했다는.
공원 둘레길을 비잉~ 유유자적 한 바퀴 돌고나니 대충 50여분이 흘렀습니다.
이제 근위병 교대식 보러 가야죠.
버킹엄 궁전 정문 근처로 이동합니다. 저 같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실시간으로 몰려들고 있군요. 행사 시작 40여분 전인데 아직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여행 비수기인 11월에다 월요일이었거든요. 아마도 성수기 때 가신다면 한 시간 전에 가셔도 벌써 사람들이 빠글빠글했었을 것 같아요.
어디가 명당이려나. 살살 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