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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작가, 하루에 두 번이나 소매치기에게 간택당하다

딱 봐도 어리숙한 여행객, 오늘 작가

유럽에서 알아주는 소매치기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

유럽 대도시라면 소매치기 없는 곳이 없다지만 그중 유독 파리가 악명이 높디높은데, 거긴 다 이유가 있다고 하지요.

런던하고 직접 비교해 보면 런던은 소매치기가 접근하려 해도 일단 비행기 또는 유로스타, 아니면 배를 타고 입국해야 할 수밖에 없어서 사방이 열린 육로로 뚫려있는 파리하고는 진입장벽부터 차이가 큽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물가가 파리보다 런던이 더 비싸며 관광인구 및 밀집도가 파리가 훨씬 심하므로 원정 소매치기를 계획한다면 가기 편한 파리를 놔두고 굳이 런던까지 갈 이유가 없죠.(그렇다고 런던에 소매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요.)


런던에서 파리까지 가는 이동편은 유로스타를 이용했습니다.


https://brunch.co.kr/@ragony/528


비행기 대비 값이 현저하게 싸진 않지만 입출국 수속도 간편하며 출국 입국 대기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무엇보다 도시 외곽을 경유할 필요 없이 도심지까지 바로 연결되는 교통편이라 장점이 많아요.


런던 발 파리 행 유로스타의 종착역은 파리 북역입니다.

북역. 여기가 문제예요... 소매치기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

파리 북역은 공항을 오가는 RER-B 라인을 포함해서 국제철인 유로스타, 지하철, 광역철 등 온갖 라인이 연결되는 환승역이라 매우 복잡하고 오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당연히 소매치기 맛집이 될 수밖에요.


북역의 악명은 이미 많이 들었기에 파리 입국 시 긴장을 잔뜩 했습니다. 절대 멈추지 않고 한눈팔지 않으며 다가올 여지를 주지 않겠다! 결심하며 이동했기에 파리 북역만큼은 남은 사진이 거의 없어요. 그만큼 긴장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소매치기들은 저를 그냥 보내진 않았습니다.




[에피소드 1]


파리 북역에서 통합 교통권인 RATP-나비고 위클리 실물 카드를 사려고 창구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어요.

서둘러 창구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창구는 언제나 줄이 깁니다.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는데, 어느 청년이 와서 말을 겁니다.


"뭐 필요하세요? 나비고 카드는 여기서 굳이 줄 안 서도 키오스크에서 사면 훨씬 편해요."


"아, 저는 나비고 위클리 구매할 거라서요. 키오스크에선 안 판다고 들어서 여기 줄 서고 있어요."


"아, 나비고 위클리? 그거, 오늘분은 매진되었어요. 키오스크에서 일일권 사세요."


어, 이 친구 뭐지?

현지인처럼 생기긴 했는데 일단 유창한 영어가 의심스럽고(여기는 프랑스!), 아무리 봐도 역사 직원 유니폼은 아니고, 길 가던 친절한 행인이라 쳐도 굳이 창구 앞에서 줄 서있는 나에게 키오스크 이용하라고 말을 걸 이유는 더더욱 없어 보이고. 암만 생각해도 오늘의 범행 대상에 내가 물색이 되었구나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되었어요.


좀 무서웠지만, 이후 대화는 개무시하고 그냥 버티고 창구 앞에서 줄 서 있었더니 더는 말 안 걸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차례가 와서 창구 직원에게 나비고 위클리 달라고 하니 매진은 무슨 개뿔이. 잘만 주드만. 친절한 청년이라고 따라갔었다면 스마트폰이 털렸거나 신용카드가 복제되었거나 무슨 사달이 났을 겁니다. 안 넘어가서 천만다행이었죠. 낯선 곳에서 누가 따라와서 친절하게 말 걸면 영어 못 하는 척 '스미마생~'하며 가볍게 생까는 것도 요령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누가 나에게 이유없이 친절하다? 일단 의심부터.



[에피소드 2]


무서운 파리 북역.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숙소까지 가는 전철을 탑니다. 시각은 대충 오후 3시 반.

아직 퇴근시간 전이기에 전철 내부는 여유가 좀 있습니다.

문 가까운 곳에서 공간이 여유 있는 안쪽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녀들 3명이 제 주변을 에워쌉니다. 왼쪽으로 가려면 왼쪽을 막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을 막고. 아, 뭐지 이것들. 그때 뒤쪽에서 한 아저씨가 중엄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외칩니다. "픽 포켓~!" "픽 포켓~!"

그제서야 저를 에워싼 소녀들은 체념한 듯 길을 열어줍니다.

아니, 이 정도면 소매치기가 아니라 강도아녀? 내가 무슨 축구공인감. 골대 안으로 밀어 넣으며 들어오게.






파리 전철에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무려 '한국어'로도 방송이 됩니다. 자주요.

영국 버킹엄 궁전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 관람을 할 때에도 현지 경찰이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외치고 다녔었는데 그건 영어로 안내해 줬었거든요. 파리는 한국인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경고방송을 한국어로 다 해주겠어요 세상에.


뭐, 저런 연유로, 파리에선 피치 못할 경우만 제외하고 지하철 이용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버스라고 소매치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하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매치기 환경이 좋지 못하죠 - 혼잡도도 덜 하거니와, 범행 직후 눈치채기 전에 도망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스마트폰은 도난방지줄 꼭꼭 메고 다녔고(개불편했지만) 지갑은 처음부터 가져가질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소매치기 당하진 않고 무탈하게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암튼요, 유럽 방문 예정이신 한국인 분들은 요 동네는 소매치기가 아주 디폴트니까요, 자주 벌어지는 수법들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시고 단단히 긴장하고 오셔야 해요. 한국에서처럼 카페 테이블 위에 폰을 놔두거나 핸드백을 자리 놔두고 화장실에 간다거나 하면 잃어버릴 확률 100%! 가방을 등받이에 걸어놔도 안 됩니다. 반드시 안고 계시거나 최소 가방줄 하나는 쥐고 계셔야해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질 나쁜 사람들의 유입경로도 제한적이고(무비자 육로이동 불가) 사회 곳곳에 CCTV가 거미줄처럼 깔린 곳이라 소매치기의 활동이 좀 덜하긴 한데, 아예 손 놓고 있다가 유럽국가들처럼 오염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녜요.


소매치기 없는 서로 믿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

그런 날이 좀 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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