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acoustic reading
"책을 잘 읽는 것, 참된 정신을 발휘하여 참된 책을 읽는 것은 고상한 행위다. 그것은 당대의 관습이 존중하는 그 어떤 행위보다 독자를 힘들게 만든다. 독서를 잘하려면 운동선수가 거쳐 가는 것과 같은 훈련을 해야 한다. 평생에 걸쳐 꾸준한 의도를 가지고 그 훈련에 임해야 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36 인용. -
"마치 플라톤이 자기 마을에 사는데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처럼, 다시 말해 바로 이웃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듣지 못하고, 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굴겠다는 것인가? 나의 실상은 어떤가? 플라톤의 영원한 사상을 기록해놓은 『대화편』이 바로 옆 서가에 꽂혀 있는데도 그것을 읽지 않은 셈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42 인용. -
독서를 잘하려면 책을 '청각적으로'(acoustically)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독서는 보통 시각기관을 활용하기 때문에 "청각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은유다. 그렇다면 여기서 청각적으로 읽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일단 그에 대비될만한 관점으로 '시각적으로'(visually) 읽는다는 은유를 먼저 생각해보자. 흔히 시각의 메커니즘이라 하면, '나'라는 주체가 먼저 있고 이후에 '타자'를 파악하는 메커니즘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칫 잘못하면 내가 타자를 과하게 대상화함으로써 나르시시즘적인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책을 '시각적으로' 읽는다면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며 기존의 사고방식에 고착되기 십상이다. 겉보기에는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자폐적으로 맴돌 뿐이다.
반면에 청각의 메커니즘이라 하면, 어디서 들리는지도 모르는 타자의 목소리가 먼저 있고나서 이후에 내가 그 목소리를 듣는 메커니즘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보통 무언가가 '들린다'고 할 때는 보이지도 않으며 이미 선재(先在)하는 타자를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기에 대상화 할 수도 없는 타자는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한없이 무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내가 감히 어찌 할 수 없는, 어찌해서도 안되는 그러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책을 '청각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도무지 무어라 말할 지 예측할 수 없는 책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책을 '청각적으로' 읽는다면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 사고방식에 대해 스스로를 열어젖힐 수 있게 된다. 스스로의 잡음을 비우고 책이 건네는 목소리에 몸을 맡김으로써 진정한 독서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플라톤의 『대화편』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플라톤이 이웃사촌이 되어서 그의 지혜로운 음성을 생생하게 듣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처럼 읽어보자. 더욱 몰입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려봐도 좋다. 플라톤이 내 옆집에 살고 있다는데 가만히 있을 것인가? 플라톤이 바로 옆에서 내게 말을 걸고 있는데 정말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런데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플라톤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플라톤의 육신은 죽고 없으나 플라톤의 영원한 사상만은 그의 『대화편』에 길이길이 남아서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책장이나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으면서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잠깐 멈추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기존에는 들리지 않았던 플라톤의 이질적인 목소리가 온몸을 진동시키며 전율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청각적 읽기의 마음가짐을 훈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정신을 발휘하여 참된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philia1223/222623498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