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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30. 2021

“누군가에게는 푸른 섬광이 되어"

아버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했다.

몇 년 정도 구석탱이에 쳐박아두던 상자에서 트리를 꺼내 이렇게 불빛을 바라보니까 감회가 참 새롭다.

저절로 옛 시절이 아련하게나마 떠오른다.

상자에 들어있던 동생의 크리스마스 편지를 보니 2006년에 쓰인 것이다.

아무래도 트리는 그 이전에 샀으리라 추정되는데 시간 참 빠르다. 벌써 그로부터 어언 15년이 지나서 2021년도 어느새 막이 닫혀간다.


처음에 이 트리를 샀을 적에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트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혼자 이렇게 가만히 중얼거리니 어머니께서 끼어들어 말씀하신다.

"싼 맛에 샀겠지! 그때 아빠가 이마트가 2만원 내외에 사셨던 거 같아~"

그리 말씀하시니 나도 동생도 피식 웃었다.


어머니의 말씀이 다소 분위기를 깨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나로서는 오히려 아버지의 상황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을까? 그 당시에 형편이 좋지 않아서 가진 돈도 별로 없었을텐데...

당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나름대로 좋아할 모습을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트리 상자를 사들고 오셨을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순간 우리들을 향해 밝게 씩 웃으며 섬광처럼 반짝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푸른 섬광이 되어"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에 아련하게 깃든 아버지의 모습이 말이다. 


한밤중에 가만히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을 바라보니 은은하게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저렇게 반짝이는 섬광의 불빛들처럼 우주를 잠깐 비추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섬광은 어느 한 사람의 내면을 잠깐이나마 환하게 비추며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아버지의 영혼이 저 반짝이는 불빛들처럼 아른거리는 듯하다...



"너는 아직 어린 별
네 안에 간절하면
다시 꿈을 꾸게 되리
검은 어둠 밝히며
네 안에 별을 삼켜
누군가에게는 푸른 섬광이 되어
되어, 되어"

- 심규선(Lucia), <섬광 閃光>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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