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Nov 22. 2021

[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부증불감(不增不減)

7일차


Q. 이따금씩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두 가지를 늘 명심하라. 첫번째는, 우주는 영원 전부터 동일하고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백 년을 보든 이백 년을 보든 영원히 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이나 가장 짧게 산 사람이나 잃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은 빼앗길 수 없고,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현재라는 순간만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가 누구든 오직 현재라는 순간만을 잃을 뿐이기 때문이다."

- <명상록>, 제2권 14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pp.50-51 -


"나는 자연(본성)의 길을 따라 내내 걸어가다가, 내가 날마다 숨쉬어 왔던 저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숨을 내쉰 후에, 내 아버지에게 그의 씨앗을, 내 어머니에게 그녀의 피를, 내 유모에게 그녀의 젖을 대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날마다 내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었고, 내가 내 발로 무수히 밟고 다니고 온갖 용도로 써먹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떠받쳐준 그 대지 위에 쓰러져서, 나의 수고에서 벗어나 안식하리라.

- <명상록>, 제5권 4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p.90 -



 <반야심경>에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구절이 있다. 무언가를 얻었다 할 것도 없으며, 잃었다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기분이 드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구절이기도 하다. 당신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이다. 애초에 당신이 가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졌던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잃어버렸다 할 것도 없다. 설령 무언가를 가졌다고 해봤자 겨우 현재라는 순간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현재마저도 찰나 찰나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뿐이다.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저 사변적인 논리로만 억지로 끼워맞춘 주장이 아닐까? 아직 의심이 든다면 현실적으로도 따져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나름대로 버티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모든 감사한 것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명상록>에는 이와 같은 감사의 구절이 많다. 일단 마르쿠스는 <명상록> 제1권 내내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 공동체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처음 책을 본 이들은 그 부분에서 지루해하다 못해 의아한 마음까지도 들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리 지루할 정도로 길게 감사의 표현을 늘어놓는가? 거의 웬만한 연예인들의 시상식 수상소감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그러나 책을 거듭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마르쿠스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다. 그는 이후에도 감사의 마음을 종종 표현한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자연으로 확장된다. 그중에서도 위에서도 인용한 제5권 4번의 구절은 언제 보더라도 참 기가 막힌다. 그 구절을 천천히 낭독해서 읽을 때마다 너무나 감명이 깊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자연이 내어준 위대한 선물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이렇게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을 살아가며 잃어버리기는커녕 얻어간 것들밖에 없는 듯하다. 그동안에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거저 얻은 듯한 기분에 온몸에 감사함이 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들을 진정 소유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결국엔 그 모든 것도 인생을 살아가며 잠깐 빌려 쓰고 내려놓게 될 대여물일 뿐이다.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을 운명에 처해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자연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빌려서 도움을 받고 살다가 안식을 맞이할 뿐이다. 심지어 이러한 사실은 자연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그 모든 것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재산, 건강, 인간관계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 무엇이든지 잠시 내 손을 거쳤다가 다른 어딘가로 흩어질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을 살아가며 얻어간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될 때 괜한 것들에 대해서 괜한 미련을 두지 않게 된다.


 그러니 당신은 무언가를 얻었다 할 것도 없으며, 무언가를 잃었다 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얻었다 할 것이 없으므로 인생에 괜한 미련을 두지 않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잃었다 할 것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거저 얻은 것들만 가득해 보이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한 귀중한 선물들을 받아오며 일평생을 살아왔다는 기분에 단순한 감사함을 넘어서 경이로운 마음까지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불현듯 달라진다. 이전에는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별 볼 일 없게 여겨지고, 별 볼 일 없던 것들이 한껏 중요하게 느껴진다. 또한 교만으로 가득했던 삶이 겸손한 삶으로 변하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쳤던 삶은 위로와 격려를 얻게 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기분으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애초에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5년도에 청계천에서 전시하던 캘리그래피를 찍은 사진




* 해당 게시물은 필로어스의 프로그램 일부 지원을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꿈은 그저 꿈일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