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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17. 2022

십자가와 부활 : '생명의 서'를 읽으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사도 바울은 무슨 이유로 돌연 아라비아 사막으로 떠나버린 것일까?


어쩌면 그는 사막에 있는 3년간 기독교의 교리를 정교화 했을수도,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사막에 있는 동안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예수의 뜻을 끊임없이 되새겼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사도 바울은 떠났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어조로 얘기한다.1 그렇다면 부활은 무엇인가? 바울은 대답한다. 부활은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부활은 생명력있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2 같은 삶이라도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삶과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삶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절망은 죄이자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반면에 이를 거부하고 희망을 가지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이다.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듯이 "믿는 자는 절망에 대한 영원히 확실한 해독제를 소유하고 있다."3




 그러나 부활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아 버릴 때에만 우리는 부활할 수 있다.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서 십자가 사건을 겪는 것이 필요하다. '영겁의 허적에',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자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단독자로서 신과 만날 때라야 부활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여,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4라고 외치며 절규하신 예수의 실존적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부활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거짓 교사라고 생각한다. (꽤 많은 수의 대형교회들이 이러한 종류의 설교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예배가 끝나면 다시 일상적인 삶에 파묻혀 사는 삶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며 죽음에 이르는 고독함을 각오하면서까지 결연한 의지로 추구해야하는 예수의 '십자가'이다.





1 고린도 전서 15:14-15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2 나는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으로서 바울이 말한 영혼을 영육이원론의 육체(body)에 대비되는 영혼(spirit)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울 역시 이에 대해 매우 애매하게 말했다. 생명력 넘치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 곧 영적인 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3 키에르 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동서문화사, p. 216

4 마가복음 15:34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Eloi, Eloi, lama sabacht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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