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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봄 Feb 16. 2024

빈틈의 미학

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긴 참 새우깡 같아.


어느 날 데이트를 하던 중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새우깡? 웬 새우깡?"

"손이 많이가."


남편의 대답과 동시에 둘 다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맞다. 새우깡.

잘 흘리고, 잘 빠뜨리고. 나는 참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일할 때는 나름 철저한 편인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빈틈 투성이로 변하는 것이 신기하다.


일할 때는 긴장을 잔뜩 하고 집중하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편하게 '그냥 날것의 나'로 돌아오나 보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싫었다. 살짝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뭐든 실수 없이 해내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부러웠다.


(물론 이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안다. 한 분야에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다른 분야에선 나처럼 빈틈이 있다. 감추고 있을 뿐!)


같은 의미로 나는 내가 가진 약점들도 싫어했다.


나는 정말 길을 못 찾는 편인데, 얼마나 길치냐면 버스를 거꾸로 타는 것 정도는 이제 화도 안나는 수준이고.


지하철도 거꾸로 탄 적이 많으며,


면접 시간보다 1시간 일찍 해당 장소에 도착했는데 1시간 가까이 회사 건물을 찾지 못해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택시를 탔다가 면접에 지각을 해버린 그런 사람이다.


뭐 당연히 그 외에도 약점이 많다.  


과거에는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강한 척으로 하고, 더 잘하는 척, 잘 아는 척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약점을 감추지 않고 오픈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를 비하하며 드러낸 것은 아니고, 약점이 드러났을 때 '나는 이런 약점이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수준이었다.


약점을 인정하면 나를 무시할까 봐 감추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족한 점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과 수용은 오히려 자유를 준다.


그리고 내가 먼저 나의 약점을 드러내자, 다른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본인들의 약점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빈틈없고, 강점만 가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마다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다른 이유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라는 의미 아닐까?






'빈틈이 없는 것이 좋고, 빈틈이 있으면 나쁘다.'

'강점은 좋고, 약점은 나쁘다.'


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벗어던질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나 자체로서 아름다우며,

빈틈은 빈틈으로서 아름답다.

약점도 그러하다.


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지금도 잘하고 있다.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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