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이유
한 2주 정도. 글을 쓰지 못했다. 글만 쓰지 못한 게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슬럼프가 다시 찾아왔었다. 슬럼프라는 표현이 맞을까? 아님 우울이 다시 찾아왔다고 해야 할까. 무튼. 무기력하고 가라앉은 상태로 지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야만 하는 일만 처리하고 지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나를 자책하진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은 그래도 처리해내고 있는 나를 격려해 줬다. 괜찮았다 그렇지 않았다 다시 괜찮아졌다가 그렇지 않아 지는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해서일까.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가 해야 될 일들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다시 괜찮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꾸역꾸역 해냈다. 이 힘듦도 끝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입덧으로 인해서 컨디션 난조가 이어지고 밥을 먹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두통에 시달렸고, 몸이 너무 피곤했다. 피검사를 했다. 갑상전기능저하로 약을 먹고 있는데 임신하면서 수치가 흔들렸다고 했다. 용량을 늘린 약을 받아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무너지는 것이 맞았다. 몸이 힘드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렇게 강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아무리 아파 무너져도 자식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는 몸이 벌떡 일어나 졌다. 등하원도 제때 시키고, 밥도 잘 먹이고, 매일 씻기고, 재웠다.
아이는 내가 나의 삶의 루틴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고마웠다. 2주쯤 쉬다 보니 슬슬 일어나고 싶었다. 늘 그랬듯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하루에 한 가지의 목표를 정했다. 어느 날은 쓰레기를 버리고 오기가 목표였고, 어느 날은 빨래를 돌리기가 목표였다.
그렇게 하나씩 달성해나가다 보니, 하루에 2~3개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첫째 아이의 생일날. 다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못 들어와 본 사이에 구독자가 늘어나있다. 감사하다.
앞으로도 다시 무기력해질 수 있고,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시 회복할 나'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힘들면 조금 쉬어가도 괜찮으니까. 인생이란, 긴 호흡으로 달리는 마라톤 같은 것이니까. 나를 믿고 격려해 주기로 했다.
조급함을 내려놓자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둘째를 가지고 나서 요즘 자주 깜빡거리는데, 하루는 핸드폰을 놓고 나온 날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바깥 풍경이 보였다. 가을 하늘은 높았고,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은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이렇게 넓고 탁 트인 세상을 살고 있는데, 내 눈이 작은 핸드폰 속 세상만 보고 있어 세상이 답답하게 느껴졌구나 싶었다. 가끔은 일부러 핸드폰을 두고 다녀야겠단 생각이 든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들이마시는 숨이 차가웠는데,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다. 늘. 내 주위엔 감사할 것들이 천지다. 오늘로 다시 나는 슬럼프를 극복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찾아와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슬럼프가, 우울이.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