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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봄 May 17. 2024

자궁 내 성장지연, 긴박했던 둘째 아이 출산 기록

미숙아, 저체중아를 낳았다.

분명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던 아기였다.

정기검진을 하는데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기 몸무게가 하나도 안 늘었네요.



뭐지? 왜 안 늘었지?

선생님께서는 우선 일주일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고, 단백질 위주로 잘 챙겨 먹으라 하셨다. 내가 부실하게 먹은 탓인 줄 알고 아기 무게 늘린다는 음식인 고기와 과일을 물릴 정도로 먹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아기 무게가 안 늘었어요.
음..



선생님 표정이 더 안 좋으셨다. 일단 3일만 더 보자고 하셨고, 배 안에서 잘못되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 태동체크를 시간마다 하고 1시간 동안 한 번도 태동이 없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막달 사산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태동이 잠깐이라도 없으면 불안했다. 하지만 애써 괜찮을 거라 믿으며 1년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3일이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드디어 3일이 흘렀다.


아기 몸무게는 단 100g도 늘지 않았다. 3주하고도 3일이 지나는 동안 전혀 성장이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자궁 내 성장지연이니 차라리 빨리 꺼내서 키우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아기는 36주 3일이었고, 초음파 기계상으로 2.1kg 추정이었다.


아기가 워낙 작아서 태어나면 높은 확률로 바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이송될 것인데, 아예 대학병원에 가서 출산을 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출산은 여기서 진행하고 아기만 구급차로 옮기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다.


단, 약한 아기를 차로 옮기는 방법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점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출산을 한다면 오늘 당장 가능하진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해 주시고 선택하라고 하셨다.






나는 비교적 젊은 산모였고, 다른 질환도 없었다. 아기 또한 지금까지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자 소위말하는 멘붕이 왔다.


하지만 그 상태로 있을 순 없었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빠른 출산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배 안에서 어떻게 되어버리면 손쓸 수 없지만, 일단 낳고 나서는 손쓸 방법들이 있기에 오늘 당장 출산을 할 수 있는 기존 병원에서 출산을 하기로 했다. 남편도 내 의견에 따라줬다.


진료를 보러 갔다가 출산을 하게 되다니.


모두들 빠르게 준비해 주셨고, 1시간 정도 대기 뒤 출산을 바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실 앞,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잘하고 와



남편이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내가 여기 기다리고 있을게.라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남편을 마주 보고 있으면 울 것 같아서 잘하고 온다고 씩씩하게 얘기한 뒤 뒤를 돌았다. 연신 어깨를 주물러주며 토닥이는 남편의 손을 뒤로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첫째 때 척추주사가 제일 무서웠는데, 이번엔 아기가 잘못되면 어쩌나, 건강하지 못하면 어쩌나. 대학병원 의사들이 없다는데 바로 배정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등등의 걱정 때문에 그까짓 주사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반신 마취가 되는 것이 느껴지고 다리에 감각이 없어졌다. 그것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인데, 나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기만 건강하길 기도할 뿐이었다.


아기가 태어났다. 다행히 추정치보다 200g 큰 2.3kg로 태어났고, 자가호흡도 가능해서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았다.


마취에 취해서 비몽사몽이긴 했는데 영상 찍어주신 것을 보니 내가 아기를 보고 한 첫 질문이

"아기 괜찮아요? 몇 킬로예요?"였다.


나보다 아기가 중요했다. 나보다 중요한 게 없었던 이기적인 인간에게도 자식은 그런 존재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


아기가 처음엔 조금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는 말을 듣고 후처치를 위해 다시 잠들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내가 수술실에 있는 그 순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기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다.


남편은 교회에 긴급중보기도를 요청했고,

친정도 친정 교회에, 시댁도 시댁교회에 요청했으며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다 기도요청이 가서 못해도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시간 나와 둘째 아기를 위해 기도를 해다.


혼자 수술실에서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간절한 기도들의 응답으로 기적이 일어났다.


내 담당 선생님은 경험이 아주 많으신 분이셨다. 매우 높은 확률로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마지막 내가 초음파를 봤던 기계는 오차가 거의 없는 기계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2.1kg가 아닌 2.3kg로 태어났고, 일반 신생아실에서 지내다 나와 같이 조리원에 와있다.


나는 이걸 기도의 힘이라 생각한다.


아기는 미숙아에 저체중아로 태어나긴 했지만, 문제 있는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하루에 40g씩 살이 찌고 있다.


먹는 것도 좋아하고 울음소리도 우렁차서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작은 게 제법이라는 말을 하시며 웃는다.


얼마나 큰 아이로 자라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내가 4인 가족으로 자라나서 그런지 늘 4인 가족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둘째까지 태어난 우리 집은 이제 내가 어릴 적 꿈꾸던 완전체가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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