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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Aug 02. 2020

내 성격이 어때서

2020년 7월 29일 오늘의 나


보기와 달리 성격이 참 좋으시네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보이기에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의문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성격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 금세 또 기분이 풀어진다. 상대방이 보았을 때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이 되었든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지혜는 성격이 참 좋아.”

“김 팀장은 정말 성격이 이상해.”

이처럼 대부분 성격이라는 단어 뒤에 좋다 나쁘다 같은 가치평가를 나타내는 단어를 붙인다. 성격에 대한 가치평가는 평가당하는 당사자의 생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평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해석한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그 눈에 쓴 안경 너머로 내 성격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성격, 성질, 성깔 등의 단어 다음에 어떤 형용사가 붙는가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이 붙여주는 그 설명글들을 듣다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모습들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성격이라는 단어가 나를 규정짓는다. 어느새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보다는 남들이 내 성격을 무어라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해져 버렸다.     

      

한창 혈액형과 성격, 성향을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영화와 웹툰, 애니메이션 등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다양한 장르 속에서 AB형은 주로 돌아이스럽게 표현되곤 했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갑자기 종잡을 수 없이 급변한다던가 자기만의 세상에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각 혈액형들이 가진 기본적인 특성을 다양한 스토리로 풀어냈던 그 웹툰에 빠져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도 그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웹툰 속에 있는 AB형의 성격이 꼭 나를 데려다 좋은 것처럼 보였다.    

       

합리적이고 냉정하다는 

타고난 비평가의 기질로 남이 듣기 싫은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는 것

그런 한편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면도 있다는 것  


이렇게 나의 성격을 안정된 성격과 변덕스러운 성격이 공존한다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말들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또 거기에 격하게 긍정했다. 나도 규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웹툰의 AB형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표현해 놓은 성격들이 어쩌면 그렇게 나와 찰떡처럼 들어맞는지 볼 때마다 박장대소를 했었다.      


그 웹툰에 빠져 있었을 때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소문으로 들려오는 나에 대한 평가에 우쭐하기도 하고, 때론 격렬하게 부정하기도 했다. 나를 잘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한다며 친구들에게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었다. 내 성격의 좋은 면을 찾고 또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성격 좋고 훌륭한 사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래서 더욱 웹툰 속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나의 성격을 규정지어놓은 표현들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를 표준 칼로리에 맞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아요.”나 “올여름에는 물을 조심하세요.”와 같은 하나마나한 말들과 같은 느낌이다. 누구한테다 들어맞는 당연한 소리이거나, 두루뭉술한 표현들로 각자 자기한테 맞는 의미로 해석하기 딱 좋은 그런 문장들이다. 그렇기에 요즘 나는 외부에서 정해놓은 내 성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쪽으로 생각의 흐름을 바꾸었다. 내가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그만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하지만 단순하고

현실적이지만 이상을 꿈꾸며

개인적이지만 관계를 중시한다.       

  

한 사람의 개인은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지어질 수 없다. 모든 AB형이 똑같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A형스럽다가도 B형스럽다가도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 또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지닌다. 지금 이 시간 나는 글을 쥐어짜서라도 쓰면서 괴로워하지만 완성하고 나면 또 뿌듯해하는 열심을 가진 성격이다. 이 글을 다 쓰고 집에 돌아갈 때는 또 다른 성격이 출몰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남들이 규정하는 성격에 대한 단어로 나를 규정하지 말자.      


오랜 시간 나를 데리고 살아온 나 자신도 나를 규정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확정 지을 수 있겠는가.           


내 성격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돌 아이스럽든, 좋든 나쁘든 간에 나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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