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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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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Aug 16. 2020

커피 같은 사람

2020년 8월 11일 오늘의 나


외부 미팅을 하고 돌아오는 도중, 퇴근하기는 애매한 시간이라 회의 내용을 정리하자며 카페를 찾아갔다. 드립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였다. 어떤 원두를 고를지 잠시 행복한 고민을 한 후 조심스럽게 주문을 했다. 같이 온 회사 직원은 나와 다른 커피를 주문했다.      


똑같이 생긴 커피 잔에 담긴 짙은 갈색의 액체 두 잔이 나왔다. 같은 모양의 잔에 담긴 커피는 직접 경험하기 전, 겉으로 보았을 때 어떤 원두로 추출한 것인지, 어떤 향과 맛을 지녔는지 알 수 없다. 원두의 이름을 듣고서야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비추어 어렴풋이 커피의 플레이버를 추측할 뿐이다. 정작 입으로 커피를 가져갔을 때 내가 추측했던 맛과 향이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다. 


“와! 기대했던 것 이상이네. 부드러우면서 깔끔하지만 향기롭고 내가 좋아하는 시큼한 맛도 있어! 커피 맛집이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이렇게 감탄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이 예가체프인지 기억이 안남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사람을 알 수 없다. 단지 이제껏 겪어온 사람들에 대해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유형과 특징에 맞추어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추측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과 관계가 깊어지고 나면 처음에 했던 추측이 완전히 엇나갈 수도 있다. 향기로운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시큼털털한 사람이었다거나, 깜깜한 한밤중 같은 사람인 줄 예상했는데 새벽 공기 같은 상쾌한 사람이었다거나 할 때가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예측하면 안 된다.      


어떤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겉모습과 속 모습이 같은 것이 좋다거나 

아니면 속 모습이 알고 보니 진국인 경우가 더 낫다거나

어느 것이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겉모습과 속 모습 모두 알고 보니 둘 다 별로더라’보다는 그래도 ‘알고 보니 더 괜찮은 사람이라더라’ 혹은 ‘겉과 속이 한결같이 멋진 사람이더라’와 같은 긍정의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더 낫지 않을까.    

  

그저 갈색의 액체를 삼켰는데 내 입속에 예상치 못한 은은한 향기와 풍만한 맛의 조화가 퍼질 때 나는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그 커피를 사랑하게 된다.      


“이 커피 무슨 원두로 내린 건가요?”

그 원두와 카페를 내 머릿속에 각인한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예상치 못한 혹은 예상했던 바와 같이 ‘사람 향을 품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      

음.. 당신은 사람의 향을 품은 사람이군요. 이름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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