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식혜, 만두

이제는 없는 엄마의 손, 앞으로 존재할 나의 손

by 이슉

김밥, 식혜, 만두

- 이제는 없는 엄마의 손, 동그란 상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나의 손, 네모난 탁자


감칠맛을 내던 엄마의 손이 이제는 없다.
그 음식도 없다.




엄마는 정말 음식 솜씨가 좋았다. 각자 모두의 엄마들 손맛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내 엄마이기에 나에게만 맛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 친구들, 오빠 친구들, 친척들 모두 엄마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다시 맛볼 수가 없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특히 아프거나, 이런저런 일로 속상할 때면 더욱 간절해지곤 한다. 엄마가 끓여준 고춧가루 팍팍 뿌린 뜨끈한 콩나물 국, 시원하고 아삭한 동치미, 주먹만큼 큰 만두를 빚어 끓인 만둣국...


내가 꼬꼬마일 때, 아빠는 종종 할머니 음식이 맛있다며 엄마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그때는 아빠의 그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아빠의 반찬투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참~ 어른인데 왜 반찬투정을 하시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빠도 익숙한 할머니의 손맛을 다시 맛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둘러앉아 한 끼를 먹던 아빠의 꼬꼬마 시절이 그리웠던 것 같다.


아빠가 할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던 그때도 나는 엄마의 음식이 그렇게나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 먹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의 음식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매일 밥상에 올라왔던 평범한 음식들로, 계속 먹어왔던 맛이었기에 다른 집들도 다 그렇게 만들어서, 그런 정도의 맛을 품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백령도라는 서해의 아주 작은 섬에 정착하셨다. 그리고 부모님도 그 작은 섬에서 자라셨다. 그래서 음식이 대부분 이북식이었다.(물론 엄마의 조리방법이나 음식의 이름, 평상시의 말투 등이 대부분 이북식이었다는 것도 성인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엄마가 자라면서 맛보았던 이북식 요리법에 당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비법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오동통한 엄마의 손이 첨가되어 맛을 배가시켰다. 그렇게 당신만의 비법 레시피는 완성되었다.


엄마의 김밥은 얇게 채 썬 당근에 소금 간을 하고 볶아서 그것을 밥과 비비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당근 비빔밥을 김밥용 밥으로 넣는다. 그래서 당근의 달짝지근하면서 풋풋한 맛과 노르스름한 빛깔이 밥에 물들어있어서 따로 식초나 참기름으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가 김밥을 만드실 때면 나에게 꼭 볶은 당근과 밥을 비비는 역할을 주셨다. 비비다가 그 냄새의 유혹에 못 이겨 한 입 먹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엄마, 그냥 이것만 먹어도 되겠어.” 먹고 싶은 조급함이 묻어난 내 말에 엄마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소박한 엄마의 김밥에 길들여진 나는 다른 친구들의 김밥은 밍밍해서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제는 엄마 대신 새언니 손맛


엄마의 식혜는 대부분 알고 있는 식혜보다 색이 진했다. 거의 진한 회색에 가까웠다.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먼저 엿기름과 찬밥을 보온으로 설정해놓은 전기밥솥에 넣고 밤새도록 발효시킨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오랜 시간 발효를 거쳐 물처럼 걸쭉해진 그 결과물을 큰 그릇에 담에 차가운 부엌 한편에서 식힌다. 한 겨울 외풍이 심한 부엌에서 차갑게 식다 못해 살짝 얼어버린 그것은 우리 집의 근사한 디저트가 된다. 그리고 이름도 식혜라고 부르지 않고 ‘감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겨울이면 항상 먹던 밥알 동동 떠 있는 음료가 감주라고 생각했다. 달달하지만 묵직한 맛이 있었던 감주를 먹던 나는 지금의 파는 식혜가 너무 달다.

엄마는 설날에 꼭 만두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설날에 떡국보다는 만둣국 먹는 것이 더 익숙하다. 어려서는 설날에 만둣국을 먹는다고 생각했었다. 엄마의 만두는 밀가루 반죽에서 시작한다. 열심히 치대서 완성한 밀가루 반죽을 한 움큼 떼어내서 길게 만든 다음 그것을 동그란 떡국떡 모양으로 송송 썰어서 하나씩 손바닥으로 꾹 눌러 납작하게 편 뒤에 밀대로 얇게 펴면 그것이 만두피가 된다. 너무나 고된 작업에 만두피 만드는 작업은 대부분 오빠의 몫이었다. 만두피를 만드는 동안 엄마는 만두소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만두소는 큰 두부를 으깨고, 당면을 삶아서 쫑쫑 썰고, 쉰 김치를 물에 대충 씻어서 잘게 썰어서 국물을 짜내어 놓고, 갈아 온 돼지고기를 함께 다 섞어 만든다. 거기에 필요한 양념을 더하면 만두소 완성이다. 그리고 만두는 반달 모양으로 완성이 아니라, 반달 모양의 만두 양끝이 서로 만나도록 오므려 붙여 동그란 모양으로 빚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만두를 예쁘게 빚는다며 칭찬해주시곤 했다. 그때의 주먹만 한 만두를 먹던 나에게 지금 흔히 먹는 다른 만두들은 크기가 너무 작고 또 만두소가 빈약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엄마의 비법과 손맛으로 어우러진 음식을 우리 네 식구는 당연한 듯이 먹었다. 동그란 상에 둘러앉아 반찬투정하지 말라는 핀잔을 곁들여서 한 끼를 보내곤 했다.

한 끼 맛나게 먹는 승현이

그런데 지금은 엄마만의 그 비법 레시피가 끊겨버렸다. 나는 그 요리법의 중요함과 특별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흘려버렸다. 엄마의 음식이 흔하던 그때의 나는 엄마의 레시피가 원하면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는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소중히 보관하지 않았다.

지금은 동그란 상을 펴고 우리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서 먹던 그 음식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도 슬프지만, 이보다 더 속상한 것은 내가 엄마의 손맛을 재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았더라도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상 고춧가루의 종류, 원산지, 무의 수확된 시기, 당근의 원산지 등등에 따라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재료 탓보다는 음식을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엄마의 손’이 없기 때문에 그 맛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좋은 재료와 알맞은 조리법, 딱 맞는 양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이 첨가되어야 음식이 완성된다.


오동통하고 가무잡잡하며 나처럼 새끼손가락이 유독 짧고 귀여운 엄마의 손이
지금은 없다.


요즘은 포털에서 검색만 하면 무수히 쏟아지는 수많은 ‘비법 레시피’ 중에서 엄마의 것과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본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시도해본다. 내 손맛을 담아.. 하지만 아직 재료를 손질하는 것에서부터 서툴고, 없는 재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을 쌓진 못했다. 내 손맛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그래도 내 혀끝에 남아있는 엄마의 손맛을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내 손으로 그것을 찾아갈 수 있겠지 희망을 품어본다. 물론 내 손맛을 첨가해서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면서...


언젠가 나도 명절 밥상을 차릴 수 있겠지


앞으로 존재할 미래의 내 손맛과 네모난 탁자에 둘러앉아 그 음식을 맛보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요리비법 수집가, 우리 집의 기미상궁, 신선한 재료 감별사, 맛집 탐방가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게 되겠지만, 그러면서 엄마와 나의 손맛이 연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날을 즐거이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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