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투가 독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어쩔 땐 북한말을 하는 것 같다고도 하였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제일 많이 듣지만 가장 인식을 못 하는 것이 자신이라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내 말투를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할 때마다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말투의 특징을 꼬집고 따라 하기도 했는데 너무 과장되게 우스꽝스럽게 따라 했다.
한 친구에게 사람들이 내 말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싫다고 말하자 평소 내 말투를 따라 하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귀여워서 그런 거야."
평가와 지적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 평가받아지는 대상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말투가 귀여워서 우스꽝스럽게 따라 한다는 건 애초에 그들의 행동을 성립시키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조금 다르면 신기해하고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즐거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집중을 하고 그 다름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들며 자신은 비판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동물원의 원숭이는 소리를 꽥꽥 지르지만 그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한다.
"저 원숭이 왜 저렇게 예민해?"
그들이 원숭이들을 우리에 밀어 넣어 예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원숭이만 질책한다.
어떻게 보면 타인이 되어 그들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을 더 쉽게 묘사할 수가 있다.
말투가 어떤지 몰랐는데 그들이 끊임없이 말을 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인식하기 시작했듯이
그들이 잘못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습관들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면
그들 또한 인식을 할 수가 있고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예민한 사람. 그들의 상처 주는 방법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사람. 예민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반성을 한다.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글을 쓰면서 이해되기 시작하고 반성하기 시작했으며 성찰의 과정을 즐기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떤 평가를 하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