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힙하다는 음식점에 갔다. 평소 혼자 이곳저곳을 잘 돌아다니는데 주말이면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상 맛집들을 검색한 후 찾아간다. 식사를 한 후에는 또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들을 찾아본다. 내가 찾아가는 곳들은 인스타에 '요즘 뜨는 핫플'로 올라온 감각적인 분위기와 플레이팅이 멋진 메뉴가 나오는 음식점들인데 벽이 하얀색이어서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화사하게 잘 나오는 곳이거나 아니면 원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는 시멘트 벽으로 이루어진 차가우면서도 시크한 분위기의 카페도 좋아한다.
음식의 맛보단 분위기를 찾아가는 편인데 사실 분위기가 좋으면 맛도 자연스레 따라왔던 것 같다. 분위기 좋은 곳 치고 맛이 없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 매료되어 혀의 감각도 따라서 그렇게 믿어 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얼마 전 기사를 보았을 땐 코로나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가 휴. 폐업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다녀왔던 곳은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대기명단을 작성하면서 기다리기도 했다. 휴. 폐업을 하는 곳과 손님들로 가득 찬 곳의 차이는 인스타에 올라왔느냐, 안 올라왔느냐의 기준으로 나눠질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토마끼를 판매하는 집 근처 일식집을 찾아갔다. 후토마끼는 일본식 김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각종 튀김과 해산물이 들어가 있는 엄청 큰 김밥이다. 오버를 조금 한다면 내 얼굴의 반만 하다. 이런 이색적인 메뉴는 역시나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금방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웨이팅을 하기 싫어서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도 3자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자리에 앉으려는데 종업원이 “ 두 분이세요?”라고 물어봤다. 왜 난 혼자 왔는데 두 명이라고 생각한 걸까. 몇 분이시냐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왜 두 명이라고 단정 지어서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오므리고 있던 검지 손가락을 피며 “한 명이요.”라고 말했다. 종업원은 “아.. 여기 앉으세요.”라고 하며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 얘기를 친구한테 하니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었지만 난 이런 사소한 행동이 혼밥 문화를 민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열변을 토하면서 얘기를 했다.
평소 혼자서 잘 돌아다니고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후토마끼를 천천히 음미해서 먹기보다는 꾸역꾸역 집어넣어 먹었다. 내 얼굴의 반만 한 후토마끼를 먹는 방법은 두세 번 끊어서 먹는 것이 아닌 입안에 한 번에 넣어 볼이 터질 정도로 욱여넣어서 그 다양한 토핑의 맛을 한꺼번에 느끼는 데에 매력이 있는데 그때의 내상황이 후토마끼의 먹는 방법으로 인해 꾸역꾸역 먹어진 건지 나도 모르는 불편함에 정말 꾸역꾸역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음식이나 카페의 한 부분을 감성적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그것을 본 친구들은 이렇게 댓글을 단다.
'역시 혼자서 잘 놀아.'
'나도 데려가 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후토마끼를 꾸역꾸역 집어넣던 내가 생각나 난 누굴 위해서 맛집과 카페들을 찾아가고 인스타 스토리에 내 모든 일상인 양 올리는지 모르겠다. 어떤 것이 내가 정말 좋아서 한 일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는 미술용어가 있는데 이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표현된 그림을 말한다. 그림인지 사진인지 혼동되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미술 경향의 하나이다.
토크쇼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화가 '정중원'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중원은 sns를 시작했다. 친구와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게 되었고 이 분위기 좋은 카페를 공유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이것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었다. 내 일상이 있고 sns는 그 뒤의 순서. 하지만 요즘 정중원은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sns를 하려고 카페에 방문을 한다고 했다. sns라는 '가상세계'가 내 일상인 '실재'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인 '실재'가 가상인 sns'허구'를 거꾸로 좇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하이퍼 리얼리즘 그림도 똑같다고 하였다. 실재와 허구의 혼동을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 예술로 승화한 것. 그림이 사진을 따라한 것인지, 사진이 그림을 따라한 것인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재와 허구의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
어쩌면 지금 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거대한 하이퍼 리얼리티가 아닐까. 우리가 만든 허구에 우리가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