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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솔솔 Oct 30. 2024

아이의 초음파


1988년 10월 12일


아가야.

오늘은 엄마가 매달 가는 병원에 가는 날이란다. 널 엄마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병원에 가는 일은 좋은 일만은 아니란다. 아빤 오늘도 네가 공주님인지 왕자님인지 물어보라지만 네가 세상에 태어나는 날 그 기쁨도 함께하고 싶단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널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도 얼마나 상냥한지 엄마 마음에 꼭 들고 네가 엄마 몸속에서 나오는 날 엄마를 도와줄 의사 선생님으로 손색이 없는 분인 듯싶구나.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 도착해 보니 어떤 아줌마가 공주를 분만해서 1시간 정도 기다렸지 뭐니.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고통스러워하더구나. 그래서 그 뒤에 오는 기쁨도 더 크겠지. 


아가야! 

초음파 검사는 하지 않고 우리 아가가 호흡하는 소리를 들었고, 엄마 배 센티미터를 재어보더구나. 네가 호흡하는 소리를 듣고 나니까 얼마나 기쁜지 몰라. 아빠와 엄마와 아가가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빤 병원만 갔다 오면 회사에서 전화를 해서 너의 안부를 묻는 좋은 아빠란다. 


아가야! 

넌 벌써 아빠 엄마의 기쁨이고 희망이란다.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길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단다. 




엄마에게. 


엄마의 일기를 쭉 읽다가 초음파로 아기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심장소리만 듣고 나온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봤어. 내 생각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초음파 비용 때문에 그런 걸까 싶어 가슴이 아렸어. 아이 얼굴을 보고 싶었을 텐데 꾹 참았던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마음이 찡 하네. 20대 젊은 부모였던 엄마 아빠에게 초음파 비용도 부담되었을지도 몰라. 다행히 요즘은 나라에서 산모들을 위해 바우처도 지원해 주고, 초음파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어서 예전만큼 부담이 있지는 않아. 그 시절보다 의료 기술도 발전해서 아이의 얼굴도 또렷하게 볼 수 있어. 초음파 동영상도 그때그때 어플로 보내주지 참 편리한 세상이지. 



예전보다 아이를 자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궁금한 건 왜일까. 같은 팀의 후배는 아이가 보고 싶어서 검진일 말고도 다른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찍어보기도 했대. 그 사이에 얼마나 컸을까. 혹시 어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검진일 전 날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잠도 잘 안 오더라고. 나와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탓인지 아이의 건강이 꼭 나에게 달려 있는 것 같아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져. 


뱃속에서 아이의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마냥 신기해. 둘째를 임신했을 땐 이게 마지막 임신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태동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하루종일 회사에서 앉아서 생활하다가 밤에 누우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를 보며 잠을 못 자서 얄궂다가도 낮 동안 웅크리고 있느라고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미안하기도 해. 규칙적으로 딸꾹질을 하면 그게 또 재미있고 웃기더라고. 


아이가 너무 궁금해서 내 피부가 투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자세로 있는 건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마 그랬다면 아이 구경하느라고 아무 일도 못했을지 몰라.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뱃속 아이를 보고 싶어 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은 달라지지 않겠지.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혹시 임신을 하게 된다면, 어떤 신기술이 나와서 나를 놀라게 할지 벌써 궁금해. 나도 손자 손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건 또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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