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25일
나의 천사 아가야!
이 사진은 널 갖은 지 7개월 되었을 때야.
아빠와 올림픽이 열리는 날에 올림픽 공원에 놀러 갔단다.
김밥도 싸고 주스와 과자도 가지고 소풍을 갔었지.
재미있게 놀다가 아빠와 엄마는 싸움을 했지 뭐니. 이유는 사진 찍을 때마다 엄마는 앉아서 찍자고 하고 아빠는 서서 찍으라고 하지 않겠니. 네가 자라고 있는 배를 중심으로 찍어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 엄마가 화를 낸 거야. 엄마 마음은 옛날처럼 날씬한 모습을 찍어서 우리 아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 그렇지만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서서 찍는 아빠의 승리로 끝나는 하루였단다.
엄마!
난 아빠를 닮았나 봐. 나도 아이가 뱃속에 있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만삭 사진을 찍었거든.
임신으로 불어난 나의 모습을 찍는 게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때만 볼 수 있는 나의 D라인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어.
요샌 산후조리원 연계 스튜디오에서 미리 연락이 와서 날짜를 잡고 사진을 찍는데 이것도 상술이 껴있는 지라 난 그런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어.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 상 아이 신생아 사진, 50일 사진, 100일 사진 쭉 찍을 것 같았거든. 여러 번의 거절을 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예약을 하지 않았지(예약 거절하는 것도 힘들었어;;). 대신 평소 내가 봐 두었던 집 근처 스튜디오에서 만삭 사진을 찍었어. 정말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이었는데(이 날만 갑자기 꽃샘추위였거든) 사진은 따뜻하고 밝게 나와서 만족해.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도 좋지만 친정에 놀러 갔을 때 우리 가족들이 손을 올린 이 배 사진도 참 마음에 들어. 이 날도 아마 아빠가 제안해서 이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 엄마, 아빠, 나, 동생이 내 배에 손을 올리고 찍은 사진인데 아이를 기다리는 우리 가족들의 설렘, 아이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 느껴져서 참 좋아.
이 사진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나는 뱃속에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