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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솔솔 Nov 13. 2024

태동

1988년 11월 11일


벌써 거리마다 곱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낙엽 되어 거리마다 

가득히 뒹굴고 있다


우리 아가가 쉬고 있는 

나의 배도 이제는 작은 남산이 아니고

아주 커다란 남산배로 변화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뀐 탓이겠지.


아가야

요즘 들어 네게 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알고 있단다.

얼마 있으면 엄마 뱃속의 보호에서 나와

아빠엄마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먹고 자고 웃고 

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도 네가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단다.


엄마는 어젯밤에 옆구리가 아파서

잠을 자지 못했지 뭐니.

누워있는 것도 앉아서 책 읽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가 다 힘이 든단다.


어제부터는 다리 한쪽이 힘을 너무 받아서 아파서

걷는 운동을 중단하기로 했단다.

네가 엄마 뱃속에서 너무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럴까.

엄마의 이런 힘든 것을 참을 수 있지.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만 준다면. 





엄마! 

나의 계절은 겨울에서 봄을 향해 가고 있어. 

겨울에 태어난 나와 다르게 우리 아이는 봄에 태어날 예정이거든.

배가 하루하루 불러가 몸은 무겁지만 다가올 봄에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 


불러온 배 때문에 밤에 똑바로 자기가 어려워.

그래서 며칠 전에는 이렇게 반쯤 앉아서 잘 수 있는 베개를 장만했어. 

입덧만 끝나면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아이가 커질수록 위를 눌러서 이제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밤마다 고생하고 있어. 식도가 불타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니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소화를 할 수 없어 배불리 먹지 못하는 슬픈 신세야. 먹대장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미리 숟가락을 놓는 모습, 상상이나 해봤어? 



밤의 또 다른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우리 아가야. 

낮에는 회사일로 바쁘고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밤에 편안하게 누우니 밤만 되면 뱃속에서 이리저리 헤엄을 치는 느낌이 들어. 갑자기 오른쪽 갈비뼈 밑에서 뭐가 쑥 올라오기도 하고, 방광을 눌러서 갑자기 화장실에 가기도 하고. 나는 이제 잘 준비가 되었는데, 뱃속의 아가는 이제 활동 시작인가 봐.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태동을 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자꾸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이 떠올라. 뱃속에 뭔가가 꿀렁하며 움직이는 느낌. 처음엔 귀엽고 신기해서 뱃속을 통통통 눌러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가 아파서 악 소리가 날 때도 있어. 갈비뼈에 금이 가는 산모도 있다던데, 왜 그런지 이해가 가. 아이의 발길질이 생각보다 아프더라고.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있다는 신호 같아서 귀엽게 느껴져. 



임신에 따른 고통은 출산과 동시에 다 끝이 난대. 

끝을 아는 고통이라 그 끝에는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것 같아. 티브이에서는 입덧 몇 번 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만 보여줘서 이렇게 힘든 게 많을 줄 몰랐는데, 아이를 낳기 전부터 고통을 참아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 아가만 건강하다면 이쯤은 얼마든 참아낼 수 있어. 


건강하게만 만나자.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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