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산

by 차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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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8. 17. 17

천구백 팔십구년 일월 십오일


일요일 아침부터 나의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출산 예정일이 10일이나 지나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이슬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이와 난 반가우면서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불안하고 약간의 두려움도 함께한 기분이었다. 일요일은 이슬만 보일뿐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율현동에 가서 회도 먹고 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월요일부터 조금씩 배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첫날의 통증은 참을만했고 밤이면 조금씩 고통에 신음소리까지 나오게 했다.


이틀을 집에서 기다리다가 화요일에는 다시금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에 자연분만은 힘이 드니까 수술준비를 하라고 한다. 왜 이렇게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나오는 걸까. 집에 와서 짐도 다시 정리하고 마음준비도 하면서 양훈씨에게 전화를 했다. 급한 성격도 아닌데 전화를 받고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걱정이 되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면서. 어떤 녀석이 들어있기에 이렇게 아빠엄마 마음을 태우는 걸까.


그날밤부터 본격적인 고통이 찾아왔다. 밤새도록 10분 간격으로 아픔이 시작되어 둘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본격적인 분만준비를 했는데 다행히도 수술은 하지 않고 힘들어도 자연분만을 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10시부터 촉진제를 맞으니 그 고통의 시작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길고 지루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참다 참다 나중엔 병원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 그때의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이도 나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지만 이 아픔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이 고통 뒤에 찾아올 우리 아가의 탄생을 생각하며 7시간이란 긴 시간의 아픔을 어떻게 참았는지 분만실에 들어가 간호원들이 배를 누르는 고통은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심하고 고통스러웠다.


1989.1.18 오후 5시 17분

그 긴 고통의 시간에서 해방되고 새 생명의 탄생이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너무 힘들게 나와서인지 첫울음이 작고 조그마했지만 갈수록 커다랗고 힘찬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는 나에게 며칠 동안의 아픔과 10달 동안 무거움과 힘겨움에서 모두를 잊게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고 우리에게 작은 희망의 불꽃이 되어 다가왔다.


공주라는 간호원의 말에 귀여운 우리 아가를 생가하며 기쁨도 있었지만 이처럼 힘겨운 출산의 아픔을 우리 아가에게도 전해줄 것을 생각하니까 조금은 우울했다. 병실에서 아빠와의 첫 대면에서 눈을 초롱초롱 뜨고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 아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픔을 완전히 잊게 했다. 우리 아가를 보면서 머리에 작은 상처가 나서 피가 맺혀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가의 아픔에 내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아가를 보면서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에 실감 나지 않았고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했다. 하루를 병원에서 보내고 다음날 오후에 퇴원을 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아가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이의 얼굴을 보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의 첫날밤은 두 시간마다 배가 고파우는 아가를 안고 어쩔 줄 몰라 서툰 아빠엄마의 첫걸음에 당황했고, 이튿날부터는 우유를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예쁜 공주님이 되었다.



엄마!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건강하게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은 꼭 먼저 하고 싶었어. 엄마는 힘겨운 출산의 아픔을 나에게 전해줄 것을 생각해 조금 우울했다고 하지만, 그 아픔을 잊게 할 더 큰 행복을 느꼈으니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엄마와 딸은 닮은 걸까. 우리 아이도 예정일이 지났음에도 나올 기미가 없어 결국엔 유도분만을 잡게 되었어. 출산 휴가를 들어가고 매일 만 보씩 걸으며 자연진통이 오기를 기다렸건만. 나는 이슬조차 비치지 않았네. 덕분에 매일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산책을 실컷 했어. 아직도 고속터미널 근처를 지나면 그때 산책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만삭의 임산부가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니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다들 내 배를 한 번씩 보고 갔다니까. 유도 분만 날짜를 잡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 날 까지도 만보를 열심히 걸었지만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지.

IMG_2534.JPG 출산 전 날까지 봄의 기운을 만끽하게 해 준 산책길


5월 5일 저녁에 출산 가방을 싸서 병원을 향했어. 교수님께서는 당장이라도 입원하라고 했지만 마음이 너무 떨려서 하루 늦게 입원했지. 가기 전까지 순산한 산모들의 브이로그를 보면서, 온라인으로나마 순산의 기운을 받았어. 순산하는 나의 모습을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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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달랐어. 촉진제를 맞기 시작하고 느껴지기 시작한 고통에 침대 난간을 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리 고통을 참아보아도 아이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촉진제 양을 늘리고 내진을 하고 계속 반복되는 고통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지. 결국 그렇게 이틀이 지났어. 양수도 터졌건만 자궁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고 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져 응급 제왕 수술을 하기로 했어.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았지. 수술을 하기로 하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 산통 때문에 전신만취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술실 들어가고 10분도 안되어서 아이가 태어났대. 아이를 직접 보지 못하고 핸드폰으로만 아이 얼굴을 볼 수밖에 없어서 눈물만 나더라고.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고 걷기 연습도 했어. 신생아실 창 밖으로 보이는 아기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어. '정말 내 뱃속에 이 아이가 있었다고?'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어. 엄마 아빠 얼굴이 있을까 눈 코 입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퇴원을 하고 산후조리원으로 향하는 길에 아이를 안기가 너무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어. 다행히 경력자인 어머님이 대신 안아주셨지. 10개월 동안 혼자 걸어 다니던 병원을 아이와 함께 나가다니 감회가 새로웠어. 임산부가 아닌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첫 발걸음을 내딛는 느낌이야. 얼른 엄마에게 아이를 보여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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