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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Nov 15. 2024

안물안궁 근황 토크

학원강사가 됐어요.

말 그대로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궁긍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저의 근황 입니다만...



 

일단 신혼이랍시고 한껏 뽐내다가 권태기를 씨게 맞아 주변의 걱정을 샀던 늙은 신혼 아내로서,

갑자기 뜸해진 업로드에 혹 이혼을 걱정하실 여러분(?)들을 위해 저의 근황을 전합니다. 


저희 부부는 건재 합니다. ^^

시드니로 권태기 여행을 다녀와 도로 신혼... 이 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여행의 끝은 결국 현실. 

전과 다름 없는 현실, 아니 일상에서 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행이 너무 꿈만 같았던 탓에 귀국 후 잠시 호주 이민병에 걸려 방황도 했지만...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모든 걸 다 극복한다 해도, 결국 우리 부부는 일단 나이에서 탈락인 걸 알곤, 이민병도 곧 자연 치유가 됐네요.

여전히 남편은 왕복 서너 시간의 출퇴근을 하고 있고, 어쩌다 한 번씩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전보다는 수월하게 넘기고 있습니다. 


아, 전과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네, 이 얘기를 하려고 자리를 깔았습니다^^), 제가 취직을 했어요. 

정확히는 시간제 계약직이긴 하지만, 동네 초등 독서&논술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됐어요. 

이제 2주가 지났습니다.

전에도 한 번 이 직종의 알바를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유사 업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운좋게 집에서 멀지 않은 다른 아파트단지 상가 학원에 바로 채용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초등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하루 다섯 시간씩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리치고 있어요.


일은 생각보다 힘들어요.

안 하던 일이기도 하고, 적응에도 시간이 걸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 외로 이 일, 입이나 머리보다 몸을 쓰게 되네요. 

책상에 앉아 아이와 대화하고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이 책상 저 책상 아이들이 부를 때마다 쫓아다니며 몸 쓰는 일이 더 많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하느라 허리를 굽히고, 책을 찾느라 무릎을 굽히고... 

허리와 무릎에 핸디캡이 있는 저로선, 예상지 못했던 난관 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뻐근한 허리와 무릎을 푸느라 스트레칭은 필수예요. 


그런가하면 초등학생 지도? 이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전공이 문예창작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글쓰는 일을 해와서 초등생 글쓰기 쯤은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울 때가 생각보다 많아요. 

때문에 평소 아는 단어도 다시 한 번 찾아보고, 특히나 맞춤법... 출근 전에는 꼭 포털에 뜨는 우리말 퀴즈를 풀어보고 갑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육아 경험이 없는 탓에 아이를 대하는 것도 서툴고, 요즘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많아요. 

그러니 하루하루 부딪혀 가며 배우고 익히는 중인데... 

어째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학원에 나가지만, 도리어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는 학생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 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밀려드는 학생들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쏙 빠져 퇴근할 때는, 무슨 핑계를 대 그만둬야 할까 궁리를 하느라 머릿속이 다 복잡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 오전에 집안 일을 해놓고 아침을 챙겨먹고 샤워를 한 후 집을 나설 땐, 또 어딘가 갈 데가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좋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다 보면 월급이 나올테고, 월급 받는 맛에 꾸역꾸역 버티다 보면 또 한 달이 가겠죠? 


솔직히 지금은 아이들 보는 맛에, 일에서 느끼는 보람 때문에 학원 일을 한다곤 말할 수 없어요. 

그저 너무 오래 쉬어서, 뭐라도 꾸준히 하는 내가 되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을 해요. 

그리고 꼭 이 일이라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저 흘러가는대로 최선만 다 할 뿐, 그랬는데도 안되는 거면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스트레스 없이 일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적응도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보람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 또한 <아님말고>가 제 모토랍니다.

 


벌써... 

통통한 볼에 얼굴이 방울처럼 생겼는데 목소리는 시크한 아이, 수업 시간엔 묻는 말에 잘 대꾸도 안하는데 공책에 끄적여 놓은 메모(?)로 사람을 심쿵하게 만드는 아이, 키가 너무 작아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까치발로 서서 글쓰기를 하는 기특한 아이 등등...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종종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브런치 글로 남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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