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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Nov 18. 2020

비행운

활주로 저편에서

너는 무엇을 싣고 떠나는가

어떤 사연을 실었기에

떠나는 소리마저 예쁘더냐


너의 지나간 하늘에는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왔기에

새하얀 입김을 남기는가


너를 보다 문득 가슴이 시리다

과거에 갇힌 나는 그렇게 얼어붙는다


너는 어디로 떠나가는가


간혹 김포공항 활주로 근처에 가보곤 한다. 저 멀리 떠오르는 비행기는 이유 없는 설렘을 선사하곤 한다.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구를 태우고 가는 걸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가득 싣고 비행기는 어느새 날아올라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어쩌면 나는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의 여유로운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예전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그땐 참 행복했는데. 그땐 참 여유로웠는데.'


이제 다시는 그만큼의 여유를 즐기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함은 나를 더더욱 과거에 묶어놓는다. 지금부터는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고, 전공 성적이 내 앞길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 옆의 수많은 다른 이들을 눌러야 내가 살아남는다고. 진짜 같아서 더 무서운 그 말들은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든다.


때로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싣는 상상에 잠기곤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마음만큼은 잠시나마 떠나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푼다. 활주로 저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가한 사람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라고 했던가. 비행기가 주변의 모든 잡음을 지워주는 그 순간, 나는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어느 시절의 여유를 되찾는다.


사실 이렇게 옛 생각에 잠기는 시간 생산적인 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유로움에도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시기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나는 어디로 떠나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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