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페이스북이 내게 처음으로 건 말이다. 이맘때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 사진첩을 뒤져보기도 하고, 추억을 끄집어내는 데에 아침을 다 쏟았다. 자칫 올해의 마지막을 2년 전의 기억에 갇혀 보낼 뻔했다.
올해는 정말이지 시간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지 믿을 수 없는 정도다. 군대에서 벗어난 지 이제 100일이 조금 지난 나에게는 더 그렇다. 그러니 집에 와서 그저 눈 몇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24살의 문턱에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100일 동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군대에 있을 때 문득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그동안 내 취미가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니 사회에 나가면 그동안 안 해봤던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해보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동안 귀찮다며, 어렵다며 피했던 일들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많은 남성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전역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리 미련한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튜브를 참고해 3박 4일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정은 결국 4박 5일을 꽉 채우고서야 완료되었다. 다리는 부러진 듯 아렸고, 그날 저녁 맥주 한 잔에 취한 듯 어지러웠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출발하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을지 모른다. 적어도 텐트를 가져가진 않을 것이다.
하모니카를 하나 샀다. 악보조차 볼 줄 모르는 내가 왜, 언제부터 악기 하나를 잘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연습을 시작한 지는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악보는 볼 줄 모른다. 그저 느낌대로, 내 마음대로 연주했다. 그러니 아직도 한 음만을 깔끔하게 소리 내는 것에 애를 먹고 연주를 하다가 숨이 차기도 한다. 내 못난 연주를 매일 들어야 하는 이웃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래도 몇 곡은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유의 '가을 아침'과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군대에서 책을 읽던 습관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 읽겠다고 선택한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였다. 그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잠이 들었나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아테나이에 퍼졌던 역병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아 기억에 남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거의 비슷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럼에도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지루해서 완독 하는데에 꽤나 고생을 했다.
집에 와보니 주방에 오븐이 있었다. 문득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곧장 마트로 달려가 밀가루와 이스트를 샀다. 유튜브를 참고해 내 마음대로 설탕을 줄여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이렇다 할 제빵 도구도 없었으니 그냥 냄비에 종이 포일을 하나 깐 것이 빵틀의 역할을 다했다. 나는 빵이 너무 달면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인지라, 바게트와 치아바타 같은 밋밋한 빵이 내 입맛에 잘 들어맞았다. 건조한 날씨에도 하루 종일 반죽을 만지고 손 씻기를 반복하다 보니 손은 금세 만신창이가 되어 비누만 닿아도 화끈거렸다. 그래도 오븐의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퍼지는 갓 구운 빵의 냄새는 아침의 빵집 앞을 지나는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준다.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냄새.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 보니올해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만 같다. 이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항상 지나고 보면 다 순간의 일이었던 것만 같다. 그래도 여전히 길지 않은 내 머리를 보면 시간이 그리 빠르게 달려가지만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니 참 헷갈린다.
기억에 남는 시간만이 내가 살아온 시간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더 많은 순간들을 머릿속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저 SNS가 알려줘야만 되살아나는 가짜 기억이 아니라 진짜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그런 한 장면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