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다녀온 지 5달이 넘었다. 서서히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 참 아쉬울 따름이다.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 아무래도 다시 짐을 싸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몇몇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뇌리에 박힌 조각들은 대부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을 문득 헷갈려 10km를 돌아와야 했다거나, 할아버지가 먹고 가라며 주신 홍시가 생각보다 떫었다거나, 야영을 할 곳을 찾다가 겨우 발견한 곳이 야영 금지구역이라던가...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전부 상당히 기분이 나빴던 경험들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떠난 여행인데도 결국 남는 것은 이런 것들이니 말이다.
오늘은 당근 마켓에서 공학용 계산기를 사기로 한 날이다. 거래 장소가 강변역에 있어서 잠시 한강 근처엘 갔어야 했다. 거래를 마치고 화창한 날씨를 보니 문득 공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화창한 봄 날씨를 낭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곧장 따릉이를 빌려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계속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탁 트인 공원에 갈 생각을 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공원으로 바로 통하는 길을 몰라 잠실대교를 한 바퀴 빙빙 돈 끝에 공원에 도착했다. 3월의 부드러운 강바람을 맞고 있자니 내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질을 하다 문득 표지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으니,'4대 강자전거길 인증센터, 뚝섬 전망 콤플렉스'라고 적혀 있는 굉장히 익숙한 표지판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 얼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 그리도 반가웠을까. 사실 저 표지판이 바로 길을 잘못 들어 10km를 돌아가다 만났던 녀석이다. 잠수교를 건너 강북 쪽으로 미리 넘어갔어야 했는데 잊어버리고 지나쳤던 것이다. 그땐 저 인증센터를 한 번 가겠다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안간힘을 써서 겨우 겨우 왔던 길을 되돌아 갔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내내 첫날부터 잘 풀리는 일이 없다며 계속 투덜댔던 것 같다.
정말로 시간이 약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오늘은 그리도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작 다섯 달이라는 시간도 한 때의 고통을 현재의 '웃음 안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효능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정치철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규정하는 여러 철학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은 서사적인 존재(Chronicle beings)다."라는 주장이다. 단순히 개인의 경험적인 측면을 넘어 도적적, 감정적으로인간이라는 존재가서사적인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각자 걸어온 길이 있고 그간의 삶에 의해서 또는 주변 환경에 의해서 칠해진 개개인의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은 삶의 찌든 때처럼 지워지지 않아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표지판에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지나온 길도 많다. 그만큼 남겨진 발자국도 많다.그러니 그 길은 우리에게 그만큼의 큰 영향을 미친다. 발자국 하나하나의 작은 변화가 계속되면 결국 그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은 다른 존재인가?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럼 공백의 캔버스와 고흐의 '해바라기'는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나는 특정 조건만 만족한다면 그 둘이 충분히 같은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조건은 바로 자신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