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력
엊그제 집 안에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자세히 말하면 아빠의 이모가 돌아가신 것이다.
고인을 만나러가며 그 옛날 그녀의 삶에 후렴구를 전해 들었다. 그 사람의 애정의 크기와 사랑의 크기만큼, 사람들은 그녀의 고생하고 힘들고 외롭고 고단했고 불쌍했고 척박 했던 삶을 이야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고 또 여기까지 살아왔다.
가족들은 그녀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며, '잘못된 결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쪽의 마음일 것.
두 사람과 두 사람이 이룬 가정과 부부의 마음은 우리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소위 평범하지 않은 결혼을 '선택'했고 나는 그것을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 어쩌면 '부모의 책임'일 수도 있겠지.
선택을 책임감 있게, 확실하게 만들어 내는 힘은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부부'를 넘어서 '나'의 인생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네가 품어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적에 내 자식으로 올라와 있음에 책임 지는 것. 아이가 힘든 순간들을 견뎌낼 때마다 버텨 주고, 평균을 벗어나 잦은 사고와 적응이 힘들 때마저 믿어주고, 그녀의 학업을 마칠 수 있게 환경을 바꿔 주고, 그것도 아이의 삶을 책임감있게 그리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노력이겠지. 그것은 '내 인생의 책임'을 넘어서 '아이'가 흔들리는 무수한 그 순간들을 아이가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가르친 것이다.
내가 품어 낳은 자신과 가슴으로 품은 자식을 구분 하는 것이 아니라 등본에 있는 내 가족. 호적에 오른 내 가족을 위해 책임을 진 것이겠지. 그렇게 버티고 그렇게 책임지는 법을 몸소 가르친 것이겠지.
가까운 가족은 '시집을 잘 못 갔다' 말 하지만, '선택을 잘못했다'라는 말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뱉은 적이 없다. 정말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을 놓아 버릴 까봐 걱정 했던 건 아닐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했고 최선을 다해 살아 냈고 앙상하게 굳어가는 뼈들과 몸들과 내 체온들이 가족 옆에서 지킬 수 있게 해줬다.
그녀의 영정 사진은 여느 영정 사진과 달랐다.
네일아트가 되어 있었고, 고운 화장에 예쁜 모자를 예쁘게 썼고 굉장히 젊고 고운 얼굴에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미처 내가 발견 하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저 곱고 예쁜 얼굴을 오래토록 기억 하고 있겠지.
나이가 들어 누군가가 떠나는 모습이 아니라, 예쁘고 아름답고 젊었던 그 시절의 모습에 행복해보여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책임감 있는 삶은 그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