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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를 내는 법 2

미학의 역사

-Based on true story-


두 연예인보다 앞서 대표님이 미팅에 도착했다. 40대 중반의 세련된 사업가인 대표님은 나에게 비장한 당부를 전했다.

“PD님이 총괄하는 거예요. 절대 기죽을 필요 없어요.”

나는 기가 죽지도 내 역할을 잊지도 않았지만 대표님은 반복해서 당부했다.

“PD님 어리지만 프로듀서예요. 저도 사실 어리지만 PD님은 더 어려요. 사실 이 일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거 알아요. 그건 다 그래요. 절대 포기하지 마요. 피디님하고 싶은 거 다 fuckin해요! 끝까지 가는 사람이 무조건 이겨요. 우사인볼트! 우사인볼트가 왜 세계에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방송인 A 씨가 등장했다. 그는 나에게 나이를 묻더니 형님이라 부르겠다며 빠르게 호칭을 정했다. TV에서 보던 대로 쾌남이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건너편에서 상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아득히 몰려오는 섬광에 오른쪽 눈을 감았다. 나는 간신히 실눈을 뜨며 확인했다. 100만 유튜버 B양은 아프로디테의 탄생처럼, 태초의 빛처럼 내게 걸어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성과의 만남은 실로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 총괄프로듀서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움켜잡고 프로듀서로서 회의를 시작했다.


서로 원하는 음악의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먼저 방송인 쾌남이 입을 열었다.

“저는 자미로콰이 같은 음악을 불러보고 싶어요! Furture!, 지기지기~, Made of~ 지기지기!”

그는 손과 입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기타 세션에 대한 비용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발력을 발휘해 연주자 대신 샘플과 신디사이저로 때울 수 있는 다른 곡을 제시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눈치가 없는 쾌남은 대답했다.

“아니요! 올~게닉(Organic) 해야 해요”

다른 곡을 제시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내 돈으로 세션비를 냈다가 교통카드까지 막혔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쾌남과의 치열한 고지전을 펼쳐야 했다.


유튜버 아프로디테는 아가자기하며 코지(Cozy)한 분위기의 음악 커버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운데에는 베이지색의 소파가 있고 귀여운 퍼커션과 촬영팀과 별개로 아늑한 조명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헤어, 메이크업 팀은 어디에서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멋진 아이디어에 감사하다며 신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최종 협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 미팅 날짜를 잡았다. 두 연예인은 다음 스케줄을 위해 떠나갔고 나 홀로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찰칵”

생각보다 큰 소리에 놀랐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고 테이블과 <미학의 역사>의 제목만 보일만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미팅. #프로듀서 #국민프로듀서아님’


사무실을 나오는데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것보다 빌딩 창문에 비친 부어오른 얼굴은 더욱 처참했다. 밥을 먹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잔액을 확인한다.

‘338,951원’

월세는 330,000원이니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나는 건너편 롯데리아를 향해 미친놈처럼 뛰어갔다.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한 달 만에 맞이하는 죄책감 없는 식사. 가난한 자의 식사에는 죄책감이 함께한다. 메뉴를 고르고 감자튀김 사이즈 업을 하고 나니 9,000원이 넘는다. 사이즈 업만 하지 않으면 월세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이성은 천박한 나의 욕망을 붙잡지 못했다. 망설임 없이 아이스크림까지 추가한 후 만원을 결제했다.


나는 누구보다 천박하게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어느 정도 포만감이 올라올 무렵, 맨 손으로 감자튀김 두 개씩 처먹고 있는 나를 자각했다. 간발의 차이로 오늘 월세를 입금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업로드한 피드를 확인한다. 일주일 전부터 흠모하게 된 여인의 좋아요를 기다렸지만 군대 후임들의 좋아요가 가득하다. 그리고 오늘 미팅을 했던 두 연예인의 계정에 팔로우를 했다. 맞팔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몇십만의 팔로워들 사이에서 나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쾌남-방송인, 아프로디테님이 팔로우합니다.’

‘아프로디테-유튜버, 쾌남님이 팔로우합니다.’


이 둘은 금세 인스타로 서로 맞팔을 주고받았다. 인플루엔서들의 삶이란.

나는 손에 묻은 소금을 두 번씩 핥은 후  <미학의 역사>를 다시 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흠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에서 시작되어 쇼펜하우어까지 좁혀지는 서구미학의 전개는 음악가가 음악을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요즘 나는 이 쇼펜하우어에게 한참 머물러 있다. 어느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지닌 자의 특권이다.


일생을 고독했던 그의 문장에 피식, 웃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무리한 주장을 믿기로 한다. 고독은 위대한 나의 숙명이다! 음악을 사랑했던 쇼펜하우어처럼 나는 슬퍼지면 자꾸 음악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음악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주장도 믿으리라. 이것은 구원으로의 질주다. 얼른 처먹고 나가라는 롯데리아의 커다란 음악 소리 속에서 나는 더욱 쇼펜하우어의 아름다운 세계로 고독하게, 고독하게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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