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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

나는 우연히 어느 모임에 참여했다. 음악 감상 모임. 일반인 대상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나는 조기 축구에 참여한 선수 출신과 다를 바 없다. 힘겹게 작업을 마치고 겨우 모임 장소에 도착했더니 이미 모임이 한창이었다. 음악을 듣고 서로 한 마디씩 나누고 있었다. 나는 중간 참여를 하였지만 화려한 드리블을 선보였다. 해당 음악의 작곡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역사를 떠들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했어야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쉔베르크의 무조음악, 독일 프랑크프루트 학파와 테어도어 아도르노의 철학까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의 찡그러진 표정을 발견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직장에 다니는 일반인보다 예술가가 우월하다는 식의 삐뚤어진 심보까지 드러내며 나의 가난은 나의 성실함과 재능의 부재가 아니라 필연이며 성공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 일인지 설토했다.  

    

참을 수 없는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좌측에서 후라쉬가 찰칵, 일어났다. 누군가 사진을 찍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다시 한번 후라쉬가 일어났다. 나는 열변을 토하면서 줄줄 새어 나온 침을 급히 닦고서 옆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나의 이야기에 감초처럼 들어간 고급 유머에 웃고 있는 미소녀가 있었다. 한번 더 유머를 던지자 후라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후라쉬는 그녀의 미소였으며 셔터 소리는 그녀의 웃음소리였다.     


이쁜 소녀가 웃고 있지만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주제를 안다. 저 소녀가 나를 좋아한다면 의심부터 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녀는 내 유머에 웃다가 지쳐 끝날 때쯤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나의 유머는 그녀의 정확한 웃음 취향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뿌듯하다. 우리는 모임을 마치고 헤어져야 했다. 나가는 길에 각자의 방향을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진실을 포함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 다들 버스 타러 가시는군요? 저는 주차를 해놔서 주차장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따릉이 주차장을 향했다. 나는 차가 없다.     


따릉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남색 코트에 단정한 머리, 정갈한 말투로 확실히 이쁘고 우아했으며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나를 발견하더니 다시 물거품을 물었다. 주차를 했다는 것이 따릉이였다는 사실에 다시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방.

“태워드려요?”


그녀는 한참을 기절했다가 깨어났고 함께 버스를 타러 갔다. 사실 나는 반대 방향이지만 지속적으로 거품을 물고 기절을 했던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같은 방향이라고 했다. 완벽한 선의의 거짓말. 우리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그녀가 내리는 10분 정도를 함께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버스에서 내릴 때 나의 핸드폰에는 그녀의 연락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반짝이는 안광이 있었고 그건 나를 미치도록 긴장하게 했다. 버스에서 어떤 헛소리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막무가내로 달라고 했거나 내가 싸움을 잘한다며 협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다 깨져가는 핸드폰에는 그녀의 번호가 있었고 나는 정거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30분 거리를 2시간에 걸쳐 집에 들어갔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적절한 시간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자를 남겼다.

‘잘 들어가셨어요? 아까 기절하셨던 게 많이 걱정되네요.’

독자들은 지금 당장 나에게 축하의 댓글을 하나씩 달아주시길 바란다.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오늘 진짜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답장을 받고 기뻐 진상을 피우다가 테이블에 무릎을 박고 캑캑 소리를 내며 굴러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긴 문자를 주고받았다. 문자 속의 그녀는 생각보다 사려 깊었고 생각만큼 우아했으며 아무튼 수상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신의 무심한 호의처럼 툭, 내 눈앞에 와있다.     


신은 나를 괴롭힐 때마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다시 빼앗아 가곤 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이번에도 해 볼 테면 해봐라. 그다음 주였던가. 나는 객기를 부렸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시회 같이 가실래요?’

문자를 보내놓고 몸이 발발발 떨리다 못해 서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무언가 읽어야만 했다. 나는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알라딘에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주문했다. 사랑 타령만 하는 이 느끼한 프랑스 아저씨의 글을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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