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머핀은 사실
김머핀이라는 이름을 보면 내가 머핀을 정말 좋아할 것 같지만, 실은 나는 머핀보다 와플이나 타르트를 훨씬 더 좋아한다. 머핀은 그냥 카페에서 만만하게 시켜 먹기 좋은 디저트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왜 김머핀이 되었냐. 김머핀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사실 김머핀은 조와플이었다. 그런데 발음도 그렇고 기억에 잘 남지 않았는지, 나의 오랜 절친이 "그 뭐였지? 머핀이었나? 쿠키였나?"라고 말했고, 나는 덥석 "그럼 머핀 하지 뭐, 김머핀 어감 괜찮네."하고 머핀을 물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지어진 것이 이 김머핀이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붙이고 나니 어디 가다가도 머핀이 보이면 왠지 사야 할 것 같고, 이런저런 새로운 머핀이 있나 기웃거리게 되었다. 이런 걸 보면 취향이라는 것은 가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한국에서 특히 좋아하는 머핀은 블루베리와 크림치즈 머핀이었다. 블루베리 머핀은 달달한 머핀에 상큼한 블루베리가 톡톡 터지는 맛이 좋았고, 크림치즈 머핀은 고소하고 진한 크림치즈가 뜨거운 열에 녹아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게 퍼지는 맛이 한 입만 먹어도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머핀이라 하면 달달한 디저트로 알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뉴질랜드에서 만난 페타 치즈 시금치 머핀과 치즈 베이컨 머핀, 감자 베이컨 머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단맛 사이에 강렬한 짠맛이라니. 한 입 먹으면 또 다음 한 입이 당기고, 그렇게 먹다 보면 순식간에 한 개를 먹어 치우곤 했다. 한국 머핀에 비해 크기도 1.5배는 되어서 커피나 우유와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도 뚝딱 해결된다. 마트에서 2불(한화 약 천오백 원) 하는 커다란 머핀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머핀의 좋은 점은 그냥 먹어도 좋고, 무엇과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는 것이다. 또 어느 재료를 추가해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어느 머핀이든 커피와는 말할 것도 없이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우유에 폭 적셔 먹는 머핀의 맛이란! 나는 특히 초코 머핀을 우유에 적셔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유와 초코의 조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초코 우유가 증언해주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당당히 외쳐보겠다. 또 아몬드 가루와 아몬드 슬라이스가 잔뜩 들어간 아몬드 머핀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홍차(특히 다즐링)나 설탕은 넣지 않고 우유만 첨가한 밀크티와도 잘 어울린다. 진하고 짭짤한 치즈 머핀은 의외로 허브티와 딱이다.
또 조금 맛이 덜한 머핀이라도 위에 크림과 과일 정도만 올리면 금세 화려한 컵케이크로 변신한다. 버터크림에 예쁜 색을 더해 올려내면 아이들이 껌뻑 죽는 버터크림 컵케이크가 된다. 생크림은 워낙 여러 과일과도 잘 어울려서 수중에 가진 과일을 아무거나 올려도 훌륭한 케이크로 변신한다. 생크림과 딸기를 올리면 컵 쇼트케이크가, 초코머핀에 중간중간 생크림과 브랜디에 절인 체리를 샌드하면 순식간에 작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가 탄생한다. 그리고 생크림과 누텔라를 섞어 머핀에 바르고 바나나를 올리면 달달함의 끝판왕인 초코바나나 케이크가 된다. 머핀만 가지고 있으면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쳐도 무서울 것이 없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머핀을 더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크랙이다. 크랙은 빵이나 케이크를 구울 때 반죽이 부풀어서 속에 있던 반죽이 터져 나와 갈라지며 생기는 모양을 말한다. 빵이나 케이크가 잘 부풀었다는 증거이자 잘 익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색깔의 대비 때문인지 크랙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 보인다. 얼마나 잘 갈라졌느냐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 맛있는지 맛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머핀도 평평하게 그냥 있는 머핀보다 봉긋하게 올라와 잘 갈라진 머핀이 훨씬 더 맛있어 보인다.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봄의 어느 날, 잘 갈라진 머핀을 보다 문득 '사실 삶의 구김살도 머핀의 크랙 같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구김살 없이 곱게 자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구김살 없이 밝고 맑게 자란 사람들이 가지는 특유의 해맑음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니까. 구김살이 없는 사람들은 뭐든 꼬아보지 않는다. 또 도움을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이고, 칭찬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서 말하는 사람도, 옆에서 듣는 사람도 흐뭇하게 만들곤 한다. '해사하다'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곤 했다. 인생을 천에 비유한다면 그런 사람들의 천은 티 한 점, 구김 하나 없이 쫙 펴진 눈이 시리게 하얀 광목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모두가 각자 서로 다른 힘듦과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알지만, 한 번도 삶이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진 적이 없는 사람들이 주는 티 없는 맑음이 너무 예뻐서 그게 참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괜히 조금 버겁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도움을 받는 게 왠지 빚지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갚으려고 전전긍긍했으니까. 칭찬을 받으면 어찌할 줄을 몰라 "아니에요"를 연발하며 나도 뭔가 상대의 칭찬을 하려고 눈치 보기가 일쑤였으니까. 바닥에 떨어져 찌그러진 우유갑은 아무리 열심히 펴봤자 주름이 남기 마련이다. 삶과 우유갑은 비슷해서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불쑥 튀어나오는 이 주름들이 부끄러워, 애써 주름지지 않은 척 펴지지 않는 주름을 손으로 억지로 눌러 펴곤 했었다. 그러나 이미 가진 내 구김살을 다려서 펼 수 없음으로 볼품없는 머핀 위에 크림과 화려한 과일을 얹어 가리듯 안 그런 척 웃으며 나의 작은 못남을 꽁꽁 숨겨두곤 했다.
잘 터지고 갈라져 노랗게 올라온 속살을 당당히 보이는 머핀을 보니 새삼 대단해 보였다. 상처를 전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처가 준 그늘을 무작정 숨기기만 하는 것은 아직 그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이다. 크랙이 구워지는 동안 주변 반죽과 어우러져 예쁜 색을 내듯, 내 구김들도 내 좋은 부분과 잘 어우러지게 내가 좀 더 잘 구우면 더 예쁘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 봄날, 살랑거리는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나는 하얀 접시 위 보기 좋게 익은 머핀을 포크로 갈라 천천히 먹었다. 귓가에서 새가 울었다. 행복하다는 듯이.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도 머핀은 그 자체만으로 맛있었다. 나뭇잎이 일렁였다. 그 사이로 햇빛이 유리처럼 빛났다. '그냥 머핀이 김머핀보다 낫네'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