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이라는 낭만적 결정

낭만적 결정에 방해되는 현실의 장벽

by 김영
와, 정말 낭만적이다!

남편은 이삿날이 거의 다 돼서야 친한 친구들에게 시골로 이사 간다고 연락을 했다. 단체 채팅방에 시골로 이사 간다는 남편의 말에 한 친구가 “낭만”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시골로 가겠다는 결심의 90%는 낭만이었다. 낭만적 사고에 기반한 낭만적 결정이었다. 어떤 때는 낭만을 넘어 망상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이런 낭만적 결정은 현실의 장벽에 앞에 주춤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바다뷰 아파트를 본 다음부터 나는 계속 그런 콘텐츠만 찾아봤다. #귀촌 #바닷가아파트 #시골생활 이런 키워드들을 며칠을 찾아봤더니 영원히 귀촌 콘텐츠만 볼 수 있는 알고리즘에 갇혀 버렸다. 즐거웠다. 다른 이들의 시골 생활을 엿보는 일로 나의 낭만적 세상은 점점 커져갔다. 더 이상 이곳에, 서울에 머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장 시골로 가기에는 현실적 장벽이 있었다.


도시의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집의 소비 패턴상 대형 마트나 백화점이 시골에 없다는 건 괜찮았다. 보통 온라인으로 장을 봐서 새벽 배송을 받고는 했는데, 새벽 배송이 안 되는 것 빼고는 택배는 다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택배 물류 시스템 천국이다.) 가끔 대형 마트를 가야 한다면 옆 도시의 이마트를 다녀오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소소한 장은 면 단위마다 있는 하나로마트를 가면 될 것이다. 백화점에서 옷을 안 산지는 아주 오래였고, 문화센터도 한두 번 다녀본 것이 다니까. 영화관, 공연장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자주 가는 공간이 아니니까.

우리 가족이 주로 가는 곳은 돈가스 집, 다이소, 스타벅스 같은 카페 정도다. 동네 산책을 좋아해서 어디를 특별하게 자주 가지는 않는다. 동물원, 아쿠아리움 같은 곳에 가는 것도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돌며, 여기저기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낙이었다. 그렇기에 도시의 인프라를 포기한다고 생각했을 때 안 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병원이었다. 만보는 그 당시 3살이었다. 한 달에 2주 정도는 병원 약을 먹었다. 코가 막히거나, 열이 나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 집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 휴일에도 문을 여는 소아과가 있다. 시골에는? 시골에는 소아과가 거의 없고, 옆 도시에 있다는 소아과는 매일 같이 붐빈다고 한다. 내가 살고 싶은 바닷가 아파트에서 차로 소아과는 거의 40분이 걸렸다.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응급실은? 소아 응급실은 따로 없고, 대형 병원 응급실은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지금은 뒷산만 넘으면 대학 병원의 응급실이 있다. 급할 때는 언제든지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 응급실로 갈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골에 가면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는 걸까? 나의 엄마, 아빠는 벌써 10년쯤 전에 강원도 평창으로 귀촌했다. 은퇴한 나이의 귀촌이라, 당연히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지는 않는다. 연금과 소소한 용돈 벌이로 생활한다. 서울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도시 생활에 지쳐서 한 귀촌이라 어떤 사업적 목표가 있지 않았다. 남은 노후의 날들을 치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귀촌이었다. 그렇기에 귀촌 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부지런히 텃밭을 가꿔서 먹고살 작물을 재배한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서울에 있는 우리 삼 남매에게 고루 나눠 주고도, 일가친척들에게도 택배를 보낼 정도다. 엄마는 늘 시골 생활에 돈이 별로 안 든다고 한다. 하지만 기초 주거비와 자동차 기름값, 생활용품, 가끔 사 먹는 고기, 외출할 때 필요한 비용 등이 있어야 하기에 소소한 용돈 벌이는 꾸준히 하신다. 엄마가 아마도 시골 생활에 돈이 별로 안 든다고 느끼는 건 우리 삼 남매 중에 엄마, 아빠한테 손 벌리고 지내는 자식은 없어서가 아닐까. (물론 엄마, 아빠에게 보태 주지도 않지만)

그럼 나는 시골에 내려가서 엄마처럼 소소한 용돈 벌이를 하며 자급자족을 위한 텃밭 농사를 짓고를 살 수 있을까? 일단 나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이 한 명을 키우고 있고, 이 어린이는 꽤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사를 짓고 싶지 않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고, 잘 해낼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텃밭에 여름 한 철 먹을 상추 조금 키우는 것 말고는 일을 더 벌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장 나와 남편 모두 퇴사를 하고 시골에 간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시골에는 어떤 일자리가 있을까?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아직 살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았는데, 경제생활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골 생활은 그저 낭만적 상상에 가둬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적 문제들로 남편과 시골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금은 안 된다는 말로 이야기가 끝났다. 남편의 현실적인 질문에 나의 낭만적 대답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남편이 이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으면, 왜 그냥 좋잖아라고 대답하는 식의 대화였다. 이래서는 시골로 절대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현실의 장벽을 깨부술 낭만 망치를 찾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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