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40대라는 나이가 주는 알 수 없는 느낌이 있습니다. 자칭 타칭 엄청 동안이라 그렇지 큰 아이가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40대 중반의 어디쯤을 걷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20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시절이었고, 30대는 너무 바빠서 내가 일인지 일이 나인지 모르고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40대는 일은 일대로 많고 절반을 넘었다는 느낌때문인지 시간이 더 빨리가는 느낌입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시간이 자꾸만 도망가는 느낌이랄까요.
사십춘기라는 우스갯 소리도 해보지만 확실히 정서적으로 40대는 순간 순간 견기디 힘든 시린 순간들이 더 많이 지나갑니다. 마치 시퍼런 날 하나가 가슴을 베고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조금은 눈을 감고 귀도 닫고 고요히 있어봅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괜찮아질거라고도 말해줍니다.
확실히 체감될 만큼 줄어가는 기억력이 일에는 방해가 되지만 되려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얼마전 정신 놓고 있다가 늘 끼고 다니는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무선 이어폰이 없어지니 노래를 덜 듣게 되고 또 세상 시끄러울때면 귀에 끼고 유키구라모토의 연주를 들으며 힘들고 시린 일들을 잊을 수 있었는데 한동안 그럴 수 없게 되어 좀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점점 세상 소리에 마음을 닫아가는 그리고 개의치 않아하는 스스로가 좀 놀랍기도 합니다.
일전 글에서 '목석'이 되고 싶다는 그 이야기도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이 마음이 쉬고 싶은 마음인지 아님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알아달라고 시위를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목석이 되고 싶은 건 확실합니다.
세상 소리가 가득해져가던 일상 속에서 그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건 확실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극예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지역적 여건이 갑자기 나설 수 없는 형편이라 아쉬운 대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합니다. 선택이라고 적는 게 우스을 만큼 일년중 사흘 건너 한편씩은 보는 듯 하니 엄청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뭐든 좀 중간이 없는 탓에 쉽사리 바뀌지 않는 삶의 패턴입니다.
일전에 극장을 찾았을 때 예고편부터 기대가 컸던 뮤지컬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고민 없이 선택해서 깊은 밤에 나섰습니다. 요즘 큰 아이 입시 레슨을 함께 다니고 있어 전혀 개인적인 시간이 없지만 삶의 관성처럼 하던 일이 쉽게 변하나요. 그 늦은 시간에 나서서 극장에 앉았습니다.
첫 넘버가 나오는 순간 사실 좀 당황했습니다.
뭐랄까요. 그간 봤던 익숙한 뮤지컬 영화의 그 느낌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건 좀 애매한 표현인 것 같은데 쉽게 말하자면 '라라랜드'의 인트로에 익숙한데 '인생은 아름다워'의 인트로를 맞이하니 20여년전 신규 교사때 저와 SBS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제가 근무하던 섬에 왔던 '샤크라' 멤버들이 잘생긴 섬마을 총각 선생님을 상상했다가 저를 만난 그 첫 순간 같다고 할까요?
그때 황보씨가 그러시더라구요, 오면서 잘생긴 섬마을 총각 선생님이면 살려고 했다구요. 그런데 섬에 들어와 저를 처음 만나고 역시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고 하며 같이 깔깔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성격좋던 황보씨의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멤버분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연 배우가 누굽니까. 염정아씨와 류승룡 배우가 아니겠습니까. 금세 어색했던 느낌이 사라지게 만들어주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일등 공신은 아마 대한 민국 국민 모두가 알고 있응 법한 영화 속 넘버들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색함도 쉽게 잊고 금방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영화 곳곳에서 어느 뮤지컬을 떠올릴 법한 많은 익숙한 장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가 앉을 수 있었고, 러닝타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얼마나 애쓰며 만들었을지 느끼게 되어 더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 넘버 하나와 다른 뮤지컬 영화의 장면을 소개했지만 각자 가진 도식을 더해 보면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삶이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미친 듯 기분이 좋은 것은 '알 수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려주는 영화였습니다. 어제 체험학습 중에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 중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번째 아사꼬는 만나지 말아야 겠어요.
추억은 추억일 때 더 아름답기도 합니다. 추억 속 흐릿한 빈 공간을 애틋함과 그 애틋함에서 비롯된 긍정적이고 행복한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추억은 부분이고 추억으로 칠해진 '인생'은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다 살아내기 전까지는 미완성이고 소풍에서 돌아갈 때 쯔음에야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언제라도 남은 빈 공간에 자기가 원하는 색깔을 칠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얼마 남았을지 모를 그 공간을 '아름답게' 채워갈 수 있는 40대의 날들을 살아내보려고 합니다. '목석'이었던 적도 없고, 될 수 도 없는 여전한 감수성의 저는 그게 되려 더 '목석'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첫사랑'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과는 첫사랑이니 굳이 찾아나서지 말기로 해요.
50대의 시작을 멋진 영화로 시작한 염정아, 류승룡 배우의 도전처럼 40대를 잘 보내고 비로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색을 더해가는 50대를 맞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가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크게 한번 외치고 뭐라도 시작해 보시게요.
인생은 아름다워!
<2022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