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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Dec 05. 2022

겨울 아침의 여유 : 결국 만나게 된다!

12월이 왔습니다. 달력을 보지 않아도 학교 중앙 현관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선 걸 보니 겨울이고 12월인가 봅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어린이들과 소원을 적어 걸라고 카드를 나눠주셔서 소박하게 적었는데 보는 분마다 소박하지 않은 소원이라고 하시네요. 그러네요 사는 일이 정말 예전 같지 않고 갈수록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니 이런 소소한 바람도 이제는 소소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특히 아침 출근에 예민한 날입니다. 주말동안 쌓인 일과 일주일을 세팅해야하는 학교에서의 업무 덕에 다른 어떤 요일 보다 마음이 바쁜 날입니다. 여느 월요일처럼 부지런히 준비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막내와 함께 차 시동을 걸었는데 세상에 배터리가 방전입니다.


서로를 쳐다보며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시간 약속에 늦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빠를 아는 막내는 아빠의 곤란함을 살피고 아빠는 딸램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을 보며 잠시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까 고민해봅니다. 짧은 고민을 마치고 우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출근이 늦을 수 있다고 연락을 합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나의 사정을 상대방에게 알려서 상대방이 나로 인해 겪을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시시콜콜 알려주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걱정하지 않게 해주고 신경 쓰이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사막 여우의 일렁이는 황금빛 보리밭처럼 내 마음을 사사롭게 걱정시키지 않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긴급출동에 전화를 걸어 느긋하게 기다립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달라진 순간을 실감합니다. 예전 같우면 분명 불같이 서두르고 발을 동동 굴렀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차라리 여유로워서 좋단 생각과 함께 차에 함께 있던 가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여유로운 아침을 선물 받은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분명 양상은 같은데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비해 까먹는 것도 많아지고 손에 쥐고 찾아다니는 물건도 늘어가지만 그것돠는 반대로 그런 만큼의 여유와 행복이 찾아들고 있다는 걸 순간 순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진작 이렇게 지냈어도 되었을 텐데 그 좋은 시절 바쁘게 다 보내고 이제야 찾아온 이 순간들이 밉기도 합니다.

소박한데 안소박하다네요.

나이들면 알게 된다는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은 정말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나이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이 아니었더라면 아무리 같은 순간이 찾아왔어도 오늘 같은 여유를 느낄 수는 없었을 듯 합니다.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고 지금이라도 찾아온 마음의 평안을 감사해보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 사는 게 다 똑같지
빠른 차 타고 과속해봐야

빨간불에 걸려 다시 만나는 게 인생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 뒤치락

너무 애쓰지 말자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우리네 인생도 흘러 갈테니

마음만이라도 이 순간만이라도

한번 외쳐 보는 거야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우리네 인생도 흘러 갈테니

마음만이라도 이 순간만이라도

외쳐 보는 거야 좋다 좋아


마봉필 '좋다 좋아' 노랫말 전문


마봉필님의 트로트 명곡 '좋다 좋아'의 가사처럼 결국 우리는 빨간불에 다시 만나게 되어있으니 없는 여유도, 이렇게 무심히 찾아온 갑작스럽 여유도 즐겨보렵니다.


잘 출근해서 긴급출동 기사님께서 출근하고 1시간 정도 시동을 켜두어야 한다고 하셔서 켜두고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오후 2시에요. 저는 이제 시동끄러 갑니다. 요즘 이렇게 행복한 날들 속에 있습니다.


2022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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