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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an 01. 2023

지금, 제주 #1 : 다시 만난 익숙하지만 새로운 제주

1100고지, 카페 와랑와랑, 세화 해안도로

지난 화, 수, 목 사흘동안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2019년에 다녀오고 만 3년만입니다. 어려운 시간들에 꼼짝 못했던 시간이 이렇게 길었다니 믿기지 가 않습니다. 몇 번째 제주인지는 이제 세지 않는다고 언젠가 글에 쓴 것 같아 이제는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완전 휴가는 아니고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정리하고 다녀왔습니다. 출발하는 날은 조금 걱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까지 제주를 비롯해서 남부 서해안 지방에 폭설이 내려서 학교들이 대부분 휴교할 정도의 엄청난 눈폭풍이 있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당일날은 다행히 날씨가 좋아 길은 녹고 내린 눈은 그대로여서 뜻하지 않은 설경에 감탄한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제주 1100고지는 설경으로 언제나 북적이는 곳인데 도착한 날은 아니나 다를까 길에 늘어선 주차행렬로 지나다니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저 이 설경에 모든 걸 잊고 행복해했습니다. 사진은 모두 차가 멈춰서서 움직이지 못해 세우고 찍은 사진이랍니다.

딱히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발길 닿는 데로 기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곳은 제주 오면 언제나 들러가는 포인트 위미 동백마을에 자리한 카페 '와랑와랑'입니다.

3년만인데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전엔 사람으로 너무나 붐비던 위미 동백마을인데 이제는 9년여전 처음 찾았을 때처럼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습니다.


제주 이야기를 쓸 때면 언제나 '와랑와랑' 이야기를 남기고 있어서 마리샘 블로그에서 '와랑와랑'으로 검색해보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연 많은 카페에 앉아서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그 잠깐 틈에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두들겨 쓴 곡을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언제나 처럼 아인슈패너를 주문 넣고 고요히 앉아 이 시간과 분위기,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잦은 전화가 좀 귀찮기는 했지만 꼭 필요한 전화들이라 중간 중간 받으러 밖에 드나들었지만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카페 '와랑와랑'


시간이 지나 찾은 곳이 변하가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만큼 설레거나 유쾌하지 않습니다. 정말 살면서 겪어보니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제주에 오면 처음엔 진한 색의 외관을 가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탁해지는 외관으로 변하다가 결국엔 문을 닫는 수많은 테마의 박물관들을 보면 그래서 더욱 씁쓸하기만 한데 '와랑와랑'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거나 탁해지는 것 없이 언제나 귤밭 돌담가에 자리하고 앉아 평안히 있어주어 감사한 마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서 지나간 시간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했습니다. 장소나 시간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나 물건, 장소에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언제나 애틋한 마음으로 아끼고 아끼며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의 익숙한 장소들을 지나며 오길 잘했단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곳이거나 설레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선 다른 생각없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밀린 마감도, 보내야하는 일들도 없는 하릴 없는 그 시간들이 선물 같은 건 정말 그간의 일상이 얼마나 분주한 가운데 해냈는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는 글 하나에 3일간의 이야기를 모두 쓸까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어 방금 글을 올려 글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 두 편 정도로 써야할 듯 합니다.

이제 보니 카페 이름이 'HORANG'인가 봅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들이 없지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두번 째 날은 성산일출봉 스타벅스 근처의 이를 모를 카페에서 종일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를 가려고 했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그 옆의 이름 모를 카페로 갔습니다. 거기서 노트북을 열고 반나절 일하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뭘 딱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앉아서 바깥의 풍경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오래 있다 보니 다양한 분들이 손님으로 오고 가셨는데 다양한 억양과 모두 다른 이야기로 펼쳐지는 순간들이 참 경이롭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다들 어딘가를 가기 위해 분주했고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단 겁니다. 그게 보통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내내 앉아서 정말 하릴 없이 창 밖만 보고 있는 모습이 되려 이상할 듯 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카페를 나서서 숙소로 갈까 하다 해안도로를 돌아가기로 하고 나섰습니다. 근처에 이름도 예쁘기만한 '세화' 해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화 근처 해안도로를 돌다가 알록달록한 풍경을 만나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하도'라는 곳인가 봅니다. 저 멀리 부두에 커다란 조형물로 이름이 쓰여 있어서 알았습니다.

이렇게 비비드(Vivid), 음 쨍한 느낌의 색을 만나면 마음이 설렙니다. 무채색보단 확실히 저는 이렇게 컬러풀 한 게 좋습니다. 다만 이 곳에 머물던 이들은 대부분 젊은 분들이었는데 저만 아저씨더라구요 마음도 같이 나이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속 없는 아저씨 같아서 조금은 눈치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길가에서 너무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반건조 오징어 한마리를 섭외했습니다. 가격이 좀 있었지만 가격이 흐릿해 보일 만큼 맛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버터구이 오징어도 아닌데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서 놀랐습니다.

반건조 오징어 구이가 가격이 좀 있어서였는지 같이 머물던 손님 한 분이 구이집 주인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오징어는 직접 잡으신 거에요?

사실 저도 은근 대답이 나도 궁금했습니다. 저 말고도 함께 머물던 다른 분들의 눈빛도 모두 궁금해하는 눈치였는데 아저씨께서 이내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배 멀리가 심해서 배를 못타요.
원양 어선이 잡아오면 도매로 사와요.

저를 포함한 주변의 모두가 함께 웃음이 터졌습니다. 열심히 구우시던 구이집 아주머니께서도 웃음을 터트리셨습니다. 아저씩의 담담하고 능글 맞은 대답에 모두가 유쾌해졌습니다.


왕왕 우리는 이내 그랬으면 하고 대답을 조금은 정해놓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영업 비밀까지 털어놓으신 오늘 반건조 오징어 구이집 아저씨의 대답은 시원하고 재밌었습니다.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 급하게 맥주 하나를 들이키곤 누워버렸지만 구이집 아저씨의 예상을 빗나간 대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어떤 질문이든 나의 이야기를 질문의 충분한 답이 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많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아가는 게 삶이지만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충분히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또 이야기를 이어나가보기로 합니다. 내일은 카밀리아힐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맨날 가는 똑같은 곳이지만 12월에 제주에 온 처음이라 12월의 카밀리아힐을 거닐어보기로 합니다.

<2023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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