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샘 Aug 15. 2023

나의 강원도 답사기 #2 : 새롭게 알게 된 강릉

오죽헌, 아르떼 뮤지엄, 경포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오죽헌이 강릉에 있었어요. 알고 계셨나요? 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 이어 속초를 지나 오늘은 강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두번 째 여행 이야기의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하다 '새롭게 알게 된 강릉'이라고 적었습니다. 모르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살면 살 수록 알아지는 건 모르는 것 천지라는 사실일 따름입니다.




강원도 여행 두번 째 목적지는 강릉입니다.


속초에 이어 태어나 처음으로 방문해본 곳입니다. 정말 듣기도 많이 들었는데 처음 와보는 곳이라 긴장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들에 늘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왜 그렇게 그런 게 어려울까요.


방문한 곳들이 많은 데 글로 쓸 때는 사적인 내용과 사진, 영상을 빼고 쓰다보니 글로만 쓰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 글은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기록에 대한 비중이 크다보니 큰 정보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속초랑 꽤 거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정말 가깝더라구요. 이렇게 가까운 줄 모르고 오전 일정을 이동으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먼저 도착해서 없던 일정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오죽헌'입니다.

누군가 생각나시죠? 네 바로 신사임당입니다.

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오죽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사임당이 강릉에 계셨던 거였네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분명히 어릴 때 위인전도 읽고 했던 것 같은데 새롭게 맞이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허난설헌과 허균도 강릉에 있었습니다.


오죽헌은 정말 작은 건물이었는데 주변을 공원처럼 잘 정리해놓아서 쉬엄쉬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신사임당의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문제인 부분은 계절이었습니다. 이 곳은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둘러보면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지만 여름에 둘러보니 꽃들이 만개하여 좋은 점도 있긴 했습니다.

워낙 오죽헌 주변의 풍광이 좋다보니 음악하는 큰 아이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여기 있으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핍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 절실함도 중요하겠지만 마음에 걱정 고민이 적으면 삶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귀납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할 때보다는 마음이 곤할 때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오죽헌 주변에 '나한'을 전시한 건물이 있어서 둘러보고 나왔는데 거기서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 수많은 '처럼'중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놀라도 좋고 진흙에 더렵혀져도 괜찮고 혼자서 가도 좋지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오전에 여유롭게 오죽헌을 돌고 기념품점에서 가족들은 마음에 쏙 드는 기념품도 하나씩 구입했습니다. 어디 가서 기념품 잘 사지 않는 사람들인데 여기서는 마음에 쏙 드는 게 많다며 다들 주렁주렁 뭘 사들고 나오는 걸 보고 다들 웃었습니다.


늘 여행의 계획은 제가 세우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큰 아이가 많은 부분을 덜어주었습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찾아주고 둘러볼 곳을 정리해주는 일을 대신해주어 정말 너무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조금씩 기대어 사는 삶에 적응해 보고 있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다 해치우고 살았던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 좀 버겁습니다.




조금 길었던 오죽헌 돌아보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습니다.


강릉은 짬뽕순두부가 유명하다고 해서 유명한 식당으로 갔는데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벌써 점심 손님이 마감이 되었다고 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근처 식당으로 갔는데 세상에 순두부와 짬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실물로 만나고 맛보고 나니 생각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강원도 음식들이 대체적으로 푸짐했습니다. 게다가 다들 친절하셨구요.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는데 강릉 분들도 친절하셨습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도 너무 불친절한 지역에서 살고 있나 생각해봤는데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내내 생각해보니 직업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교사이다 보니 늘 수렴하는 일상이 대부분입니다. 들어주고 맞춰주고 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사한 어른의 일상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고 있다보니 실상 슬픈 삐에로처럼 마음이 저린 시간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요즘 여기 저기서 이야기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 일어나는 학교의 일상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이 불볕 더위에 거리로 나와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겁니다. 교사의 입장으로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도 세 아이의 부모이고 학부모이지요.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해주시는 작은 호의에 코끝이 시큰하게 감동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었고 오랜 시간 알아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여행지에서 마추졌던 분들의 친절한 말투와 사소한 배려가 그토록 감동스러웠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오늘은 여행글이니까 무거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는 큰 아이가 추천했던 강릉 아르떼 뮤지엄으로 향합니다. 역시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시나 행사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공유하는 것은 뭐랄까 콜라 김 빼는 일 같아 언제고 하지 않습니다. 직접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괜찮아서 가보는 것도 좋지만 가보고 괜찮은지 별로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기본적인 가치관이 '되면 한다'가 아니라 '될 때까지 한다'거든요. 그래서 꼭 결과가 신통치 않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하고 주저앉는 것은 원하는 방향이 아닙니다.


아르떼 뮤지엄은 제주에서 관람했던 '빛의 벙커'처럼 정말 괜찮은 디지털 전시였습니다. 가상의 경험이라는 것이 실제의 그것을 뛰어넘을 순 없지만 가상의 것인줄 알고 만나면 그것들은 환상적인 것이 됩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면 주변의 꽃들이 변하는 전시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큰 아이의 멋드러진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뭐든 죽을 듯 비용과 시간을 들여 배우고 익혀야 결국 본인의 것이 됩니다. 대충하면 재미 없고 금방 질립니다. 죽도록 해야합니다. 취미와 적성은 사실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부차적으로 찾아지는 거지요. 입시로 한 거지만 피아노를 죽도록 몇년 치더니 스스로 빠져서 정말 좋아라 하는 그 모습을 보는 행복이 있습니다.

간만에 들어보는 큰 아이의 연주.

이 날은 예술적인 체험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한달 전에 급하게 예약했던 숙소의 위치를 사실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이제 쉬어야겠다 하고 찾아갔는데 그 호텔이 어떻게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바로 앞인 겁니다. 진짜 문고리 잡았네요.

정말 이럴수가. 물놀이를 안할 수 없었습니다.

진짜 의도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에게 칭찬 받았습니다. 센스 있게 해수욕장 바로 앞 호텔을 어떻게 예약했냐구요. 사실은 모르고 한 겁니다. 너무 비쌌지만 가족 여행이라 좋은 호텔을 알아보다 급하게 장소도 안보고 시설만 보고 예약한 건데요.

확실히 동해안 모래는 다르네요. 씨알도 굵고 깨끗합니다.

숙소에 들어오자 마자 수영복 갈아입고 아이들은 바로 바다로 향합니다. 코로나 확진으로 아직 컨디션이 다 돌아오지 않아 아이들하고 같이 못들어갔지만 역시 이제 보호자인 큰 아이가 동생들과 신나게 놀아줘서 저는 밖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있어 행복한 딸램들입니다. 보호자가 늘어 어른들도 행복합니다.

한바탕 물놀이 하고 저녁도 또 거나하게 먹고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오고 우리 전체 가족들이 함께 여행 온게 오랜만인데 다들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촘촘하지 않고 심플하게 잡은 게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강릉 경포대 하늘입니다.

여행이라는 게 여유를 찾아 떠나는 건데 일정이 빡빡하면 또 시간과 계획과 싸워야 하니 이렇게 헐렁하게 다니는 것도 정말 좋다는 걸 실감해봅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그런 빡빡한 여행 감당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예쁘고 길게 하고 있네요.


다들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에 누가 얼굴을 자꾸 간지럽혀서 일어나보니 숙소 창 밖으로 아침 친구가 인사하네요.

새해 첫날에도 늦잠 자느라 못본 일출을 여름 여행 와서 봅니다.

아침 해가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근하신년 달력처럼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새벽 시간이라 사람 소리도 없고 새색시처럼 고요하게 붉게 떠오르는 해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를 보며 일정 마지막 날인 이 날 일정을 가늠해봅니다.


먼 거리를 달려온 피곤도 서서히 적응해가고 함께하는 시간들에 감사를 포개가는 시간들이 이제 정해진 마무리를 위해 달려가는 게 아쉬워질 시간이었습니다. 생전 와본적 없는 생소한 장소에서 이렇게 지내고 있는 이 시간들이 약간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문득 이런 시간들이 또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힘을 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두 편이면 마무리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남은 이야기는 또 다음 글에서 만나기로 할게요.


<2023년 8월 15일>

작가의 이전글 나의 강원도 답사기 #1 : 친절했던 속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