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레일바이크, 대관령 양떼목장을 중심으로
'정동진'하면 요즘 MZ세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세대에겐 드라마 '모래시계'로 알려진 곳입니다. 살면서 정동진이라는 지명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드라마 한 편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한 이 지명은 몰랐던 그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온 국민이 알게 되었던 곳 중의 한 곳이 아닐까 합니다.
방문해 보고 알았지만 최근엔 새해를 맞는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침에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숙소에서 보고 나왔는데 이곳에서 봤으면 더 없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동해는 확실히 남해와는 다르게 바다에 섬이 없다보니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물색도 다르지요. 남해는 갯벌이 대부분이라 좀 탁하고 회색빛이 돈다면 동해는 시원한 파란색, 해살이 들면 하늘빛 보석같은 빛깔로도 보였습니다.
일정 마지막날 마지막 여행 일정으로 정동진에 레일 바이크를 타러 오게 되었습니다. 이 무더위에 레일 바이크라니 수년 전 아이들과 눈이 펑펑 오던 날 제주 용눈이 오름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렀던 레일 바이크 생각도 났습니다. 그리고 분명 수동식 아니고 자동식이었음 하고 기도를 했지요. 만약 수동식이면 정말 안탈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약하고 발권을 하면서 물어보니 자동식이라고 합니다. 알아서 잘 가서 정말 신났습니다.
플랫폼에서 타는 곳 까지는 꽤 먼거리를 걸어야 했는데 멀다는 생각보단 가는 길에 펼쳐진 바다 풍경 덕에 금방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영상도 있긴 한데 사진만 올려보기로 합니다. 30여분을 시원한 풍경과 바닷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정말 좋았습니다. 이 더위에 이걸 꼭 해야하나라는 여행 십계명 금지사항이 절로 생각나는 이벤트였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아직 멀었냐 금지!
음식이 달다 금지!
음식이 짜다 금지!
겨우 이거 보러 왔냐 금지!
조식 이게 다냐 금지!
돈 아깝다 금지!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금지!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금지!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금지!
물이 제일 맛있다 금지!
+(요건 마리샘이 추가한 계명)
이거 꼭 해야하냐 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숙소에 있을 걸 금지!
그럴 줄 알았다 금지!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29RYOUZMZU
중간 중간 운영하는 코레일에서 기념 사진도 찍어서 선택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데 콧구멍 후비는 사진도 있긴 했지만 그것마저 마음에 쏙 들어서 두 말 않고 모두 구입해 왔습니다. 인화된 사진이지만 QR코드로 원본도 다운로드 하게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디지털 파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운로드 기간이 딱 일주일인데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이미 보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속했는데 사진 원본이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코레일 본사를 향하여 기쁨의 세레머니 후 다운로드 해서 이렇게 사진도 소개해봅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단 해보는 겁니다. 부서지고 깨져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세상의 맛을 보기 위해선 찍어 먹어봐야 합니다. 짠 맛도 그냥 한가지 짠 맛으로 수렴되는 게 아니라 '짭쪼름'할 수도 있고, "짜디 짤'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그냥 겁내지 말고 찍어 먹어 보며 살기로 해요.
그렇게 신나는 레일 바이크를 타고선 이제 가는 길에 있는 마지막 여행지인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향합니다.
지난 글에서 미리 만났던 이 친구들 보러 가는 겁니다.
대관령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낱말. 사회 시간에 배웠던 바로 그 낱말.
고랭지 농업.
기억하시지요? 이 정도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한 여름에도 기온이 낮아 다른 데서는 기를 수 없는 작물을 기르는 농업입니다. 시험에 엄청 나왔는데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가는 길에 영동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는데 대관령을 그 길목에 있어서 동선으로도 딱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일정에서 빼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아쉬워해서 가기로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꼬불꼬불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안보이더라구요. 더 큰 문제는 동네 산길만 올라가도 귀가 멍해지는데 대관령에 다 올라서는 기압차로 귀가 너무 먹먹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자체 노이즈캔슬링이 되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싫어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거랑 듣고 싶어도 못 듣는 건 차이가 극심했습니다. 어찌나 귀가 아프던지 두통이 올 지경이었습니다. 마른 침을 계속 삼켜가며 대관령에 머무르는 동안 버텼습니다.
양떼목장은 대관령 휴게소에 주차하고 바로 올라가면 가볼 수 있어 접근성이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쉬는 날일까봐 미리 검색해보니 쉬는 날이 아니어서 방문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햇살은 강릉이나 정동진에서랑 비슷하게 따가운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겁니다. 이게 바로 고랭지의 바람인가 봅니다. 더욱 더 놀란 것은 점심을 해결하러 들어간 휴게소 식당에 에어컨을 틀어두지 않았습니다. 기절 할 뻔했습니다. 이 여름에 에어컨 없는 휴게소라니요. 그런데 처음엔 더운 것 같았는데 잠깐 앉아 있으니까 또 시원합니다.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잠시 쉬었다가 양떼 목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양들을 보러 오신 분들인가 봅니다. 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세상에 저 푸른 초원 위에 양들이 노니더라구요. 양 처음 봤습니다. 성경에도 늘 나오고, 아이들 그림책에도 늘상 나오는 양인데 저는 태어나서 양을 처음으로 실물로 만났습니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첫 글에선가 알면 알 수록 알아지는 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라는 사실을 또 실감해봅니다.
양 먹이를 직접 줄 수 있는 체험장이 있어 건초를 구입하고 양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조금은 무섭더라구요. 뭔가 이미지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이미지이기는 한데 무서웠습니다. 염소는 뿔이 있어 더 무서운데 그래도 양은 뿔이 없어 좀 덜 무섭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같이 있다보니 귀엽고 예뻐보입니다. 그리고 양들도 얼굴이나 표정이 같은 친구들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다들 표정도 얼굴도 다르더라구요. 무심한 표정인 녀석도 있고 웃고 있는 듯한 친구도 있고, 뭔가 행동도 표정도 시크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참, 앞선 글에서 미리 만났던 두 양 친구의 이야기를 해드리기로 했는데요, 딸램들이 건초를 주면 양들도 순서를 지켜서 번갈아 가며 건초를 받아 먹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먹고 있었는데 사진 왼쪽에 보이는 친구가 순서를 어기고 두번이나 받아 먹는 겁니다.
그랬더니 사진 오른쪽에 있던 친구가 앞발을 들더니 냅다 얼굴을 때려버리는 겁니다. 사진으로 찍는 거라 때리는 순간은 안찍히고 때리기 직전이라 직후가 찍혔는데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먹이 주는 것도 순서 잘 지켜서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혹시나 그러다가 양도 아이들도 다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앞서는 건 긴 시간을 선생님으로 살아온 직업적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혼자서 얼른 아닌 척했습니다 .
그렇게 한바탕 귀염둥이 양들과 초록빛깔이 가득한 양떼목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정리하며 이제 돌아오는 멀고먼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출발하고 얼마간은 가족들도 이제 긴장도 풀리고 힘들었는지 모두 잠에 빠졌습니다.
대관령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내려오는 동안 여전히 귀가 먹먹해서 힘들었지만 그 하늘과 바람과 햇살과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아래 첫 마을이라는 대관령의 그 문구가 더 확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도 정말 시골이라 풍광 좋고 매일 해지는 그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 곳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두어 시간 지났을 때 즈음 먹먹했던 귀가 괜찮아졌는데 마치 이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어렵게 온 가족이 일정을 맞춰 떠나온 이번 여름 여행은 건강 때문에 어렵던 시간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냈어도 아직도 못해본 것, 모르는 것, 새롭게 알 게 된 것들 천지라니 사는 게 너무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이틑날 일 때문에 제주로 다시 향하면서 제주 하늘을 보니 대관령의 그 하늘이 떠올랐습니다. 바다보면 하늘이 생각나고 하늘보면 바다가 생각난다는 노랫말처럼요. 살면서 이렇게 얼굴과 몸이 새까맣게 탄 적이 없는데 온통 새까맣게 탔습니다. 멋진 태닝이 아니라 시골 농부처럼 탔습니다.
모레는 또 진작부터 섭외가 왔는데 제 일정이 맞지 않아 미뤄두었던 모방송국 동요 관련 프로그램 생방송에 패널로 참여해야해서 다시 먼길을 다녀와야 합니다. 이 새까만 얼굴로 시골에서 어린들과 매일 배우고 익히며 동요하는 시골 선생님의 진가를 확인 시켜드려야 할 듯 합니다. 무슨 일이든 미루지 않고 즐겁게 해보려고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에는 벌써 가을이 실려오는 듯 합니다. 확실히요.
그래도 이 더위는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듯 합니다. 얼마전 있었던 산토끼와 따오기가 함께하는 창작동요제 본선곡인 '봄바람 꽃샘바람'의 투닥임처럼 여름과 가을의 길고 긴 투닥임이 시작된 듯 합니다.
너무 더워 내내 기억 될 이 여름이 우리들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알 순 없지만 제 마음 속엔 행복했던 여름으로 남을 듯 합니다. 아니 남기려고 합니다.
<2023년 8월 15일>